외항 상선은 국제무역에 종사하기 때문에 국제통용어인 영어를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 배를 타면서 영어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영어 공부는 해양대 재학 때부터 시작되었다. 학교에 ‘타임반’이 있었고 회화를 하는 반이 있었다. 나는 외교관이 될 꿈도 있었기에 고등학교 때에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다.
배에 올라 왔는데, 통신국장님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알려주셨다. 단파방송으로 미국에서 방송되는 영어 방송인데 한국어 방송도 해주었다. 신기했다. VOA 방송을 들으면서 고립된 선박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들의 역사, 단어와 숙어의 유래 등이 나와서 익히면 재미있었다. 이때 기억한 것으로 집사람을 아주 꼼짝 못하게 한 것이 있다. 텍사스대에서 유학을 할 때 미국 대통령 기념관이 있는데, 가장 단명(短命)한 대통령(제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이 있었다. 어떤 대통령이 취임식에 비를 너무 많이 맞아 감기가 지독히 들어 한 달도 못 가 사망했다고 하니, 집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한다. 모두 이때 배운 실력 덕분이었다. 집사람은 지금도 내가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첫 배에서 있었던 일이다. 배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만 항해를 하는데, 영국 도선사들이 근무를 했다. VOA 방송에서 위아래가 일직선이 되는 것을 ‘업 앤드 다운’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퍼펜디큘러(perpendicular·수직선)’라고 부르는 것도 알았다. 닻을 놓을 때 닻과 줄이 일직선으로 늘어지는 것을 업 앤드 다운이라고 한다. 한 번은 이 상황을 퍼펜디큘러라고 하니 영국 도선사가 다가와서 “3항사, 고급 영어인데 어디서 배웠느냐. 멋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선장님에게 가서 3등 항해사가 아주 우수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현지인 친구를 사귀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속설이 바다에서 전해온다. 나도 그렇게 해볼 요량이었다. 테드라는 선박 대리점 형을 만나 그의 친구들을 같이 보게 되었다. 몇 번을 놀러갔고, 서로 어느 정도 친하게 되었다. 버클리대를 나온 전문직 여성이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미국 롱뷰에 있을 때 엘리트 작업반장에게 여자 친구와 친해질 수 있는 멋진 문구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가 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번 롱뷰에 내가 머무는 동안 당신을 만난 것은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적으라는 것이었다. 조금 과장됐다 싶었는데, 나는 이 글을 쪽지로 만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데 출항 때 테드가 그녀의 답장을 가져왔다. 자신은 사귀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깨끗하게 물러났다. 당시 25세의 청년이라서 좀 과감했나 보다.
화물 손상 사건으로 선장인 나는 증인으로 호주 법정에 섰다. 현지의 한국인 통역을 붙였다. 영어로 질문을 하면 한국어로 그분이 통역을 하셨다. 열흘가량 심리가 열렸다. 중간쯤에 호주 변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캡틴 킴(김 선장). 한국에서 선장이라는 단어는 ‘그러면’인가요?” 웃음이 나왔다. 우리 쪽 통역사가 매번 “그러면”이라는 말을 먼저 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 호주 변호사가 질문할 때 나를 ‘김 선장’하고 불렀는데 한국인 통역사는 나한테 “그러면”이라고 먼저 운을 떼니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했다. 그래서 2002년 10월 호주 시드니 지방법원의 민사법정에서는 ‘선장(captain)’이라는 단어는 한국말로는 ‘그러면’이 돼 버렸다. 당시 외국에서 증인으로 선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증인석에서 한 말들은 다 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머 하나만 남았다. 20년 전의 일인데 이 장면만은 기억에 생생하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찰나이고 유머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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