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무주택자에게 청약 기회를 확대한다는 좋은 취지인데 벌칙 조항이 문제였다. 규제 지역에서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가 새집 입주 뒤 6개월 안에 기존 집을 팔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 입법예고 40일간 논란이 끊이지 않자 국토부는 이 조항을 삭제했다.
담당 공무원에게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미안하지만 이래서 입법예고가 있는 것이다. 법령안의 내용을 미리 국민에게 알리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거치는 법률과 달리 시행령, 규칙 등 하위 법령은 행정부 마음대로 제정, 개정할 수 있어 입법예고가 특히 중요하다. ‘국민 결재란’인 셈이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한 검찰 개혁엔 국민 결재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는 심야 조사와 별건 수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권보호수사규칙 제정안’을 15∼18일 단 4일간 입법예고했다. 이를 수정해 25일 재입법예고했지만 역시 기간은 닷새에 불과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 하도록 한 행정절차법에 비추어 보면 지나치게 짧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서 확인하니 올해 들어 이달 27일까지 입법예고한 부처 법령은 164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1346건(81.9%)이 한 달 이상 입법예고됐다. 1주일 미만은 43건(2.6%)에 불과했다. 이 중 38건은 부처 직제와 정원 등의 단순 조직 변경, 2건은 법률 개정에 따른 시행령 변경이었다. 1건은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한 것이다. 인권과 관련한 주요 법령을 새로 만들면서 입법예고 기간이 1주일에도 못 미친 건 인권보호수사규칙 입법예고와 재입법예고가 올해 들어 ‘유이’하다. 0.12%의 예외다.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은 아예 입법예고를 생략했다. 검찰 특별수사부를 축소하고 명칭을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조 전 장관의 검찰 개혁 과제 중 ‘법제화 1호’다. 물론 행정절차법 41조에 따라 입법예고를 건너뛸 수 있다. 생략 가능한 예외 규정을 따져봤다.
①‘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46년 된 특수부 간판을 내리는데 40일을 더 못 기다릴까. ②‘상위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중대한 변경이다. ③‘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국민의 명령’인 검찰 개혁인데 그럴 리가. ④‘단순한 표현·자구를 변경하는 경우’. 국군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검찰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이름만 바꿀 때도 입법예고를 빼먹진 않았다. ⑤‘예고함이 공공의 안전·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혁명적 조치나 국가기밀도 아닌데.
딱 하나 남는다.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갑작스러운 장관의 퇴임 전에 뭔가 해야 한 걸까.
입법예고는 요식행위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하다고, 귀찮다고 국민의 의견을 묻는 과정을 줄이거나 생략할 수는 없다. 개혁은 내용과 속도만큼이나 절차도 중요하다. ‘국민의 결재’를 받는 절차가 국무회의와 어전회의를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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