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사가 대리점을 상대로 ‘갑질’을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인은 물론이고 전현직 임원까지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 최종 무혐의 처리됐다. 해당 계열사가 상생기금 100억 원 출연 등 자진 시정 방안까지 제시했지만 제재를 고수하다 완패했다. 이 건은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현 대통령정책실장)이 불공정거래 적발 시 회사와 임원을 모두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한 뒤 진행한 첫 사례였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현대모비스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현대모비스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유지하며 ‘심리 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원심이 명확한 만큼 심리를 추가로 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다.
지난해 2월 공정위는 2010년 1월∼2013년 11월 대리점에 부품을 강매한 혐의가 있다며 현대모비스에 과징금 5억 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전현직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 대리점 1000여 곳을 설문 조사한 결과 400여 개 업체가 부품 강매를 경험했다고 답한 자료를 조사 결과로 내놨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작년 11월 형사고발 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대리점들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부인하거나 출석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어 올 6월 서울고법은 과징금 취소 행정소송에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며 현대모비스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가 패소한 것은 기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실적 위주의 밀어붙이기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검찰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는 진술을 통한 증거 확보가 중요하지만 현대모비스와 계속 거래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리점주들로선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 진술이 없어 기소조차 안 됐다.
재판 과정에선 공정위가 낸 ‘대리점주 갑질 피해 사실 확인서’에 실명이 없어 증거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을 입장에서 진술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이 불공정거래를 시정하고 대리점주들의 피해를 구제할 기회가 있었지만 공정위가 이를 적극 활용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신청한 동의의결을 2017년 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기각했다. 동의의결은 불공정 거래 혐의를 받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공정위가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제도다.
현대모비스는 피해 구제 방안으로 △동의의결 확정일로부터 1년간 피해 보상 실시 △상생기금 100억 원 추가 출연 등을 제시했다. 이에 공정위는 “구입 강제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아니고, 후생 지원도 이미 시행 중인 내용”이라며 기각했다. 불공정거래에 연루된 대기업 임원을 직접 처벌한다는 명분에 집착하다가 피해를 구제할 기회까지 놓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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