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외교다. 대사관 건축엔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담겨 있다. 디자인과 설계, 나무와 돌,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본국과 주재국 간의 팽팽한 긴장과 협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대사관 건축 탐방은 무척 흥미롭다. 지난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오픈하우스서울’이 평소 닫혀 있는 대사관을 개방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터넷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
○ 한옥을 재해석한 외교공관
주한 프랑스, 스위스, 미국대사관은 한옥을 재해석한 건축으로 한국인들에게 다가선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였던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1962년 완공한 프랑스대사관의 핵심은 한국적 선이 살아있는 지붕이다. 업무동의 지붕이 날아갈 듯 가볍게 하늘로 치솟았다면, 대사관저 지붕은 웅장하게 내려앉는다. 지붕은 단 4개의 기둥이 떠받들고, 두 개의 건물은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로 이어진다. 정원을 부채꼴처럼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은 마치 노래하고 군무를 추는 듯 경쾌하다. 외벽에는 김종학 윤명로 화가가 만든 모자이크로, 내부에는 앙리 마티스와 이응로 화백 등 양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돼 있다. 특히 다이닝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눈길을 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식탁 위 대동여지도는 프랑스식 테이블을 한국적인 영혼이 보호하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정부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서 45년간 사용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지난해 새 대사관을 완공했다. 스위스 출신 건축가는 설계 전 부석사, 소수서원 등을 답사한 뒤 ‘ㄷ’자 한옥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목재 대들보와 기둥으로 한옥 특유의 켜켜이 반복되는 공간감과 리듬감을, 격자무늬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대사 집무실이었다. 창 밖으로 돈의문 마을 뒤편 한양도성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뷰를 가졌다. 또한 중정에 설치된 지붕부터 바닥까지 쇠사슬로 연결해 빗물을 받는 스위스 예술가의 설치작품 ‘워터커넥션’도 재미와 감동을 준다. 빗물은 지하탱크로 모아서 정수한 뒤 화장실과 난방에 활용한다.
○ ‘미스터 션샤인’이 근무했던 옛 미국 공사관
정동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에 들어선 순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떠올랐다. 미 공사대리 유진 초이(이병헌)가 근무했을 법했던 옛 공사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한옥은 1884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가면 1974년 신축한 미 대사관저가 나온다. 당시 필립 하비브 대사의 이름을 따 ‘하비브하우스’로 불린다. 잔디밭에 있는 해태 석상 중간에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 석상이 놓여져 있다. 해리스 대사 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해 구해 놓은 앙증맞은 석상이다. 서까래와 기둥은 미국에서 가져온 더글러스전나무로 만들었고, 전통장인이 구운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관저 안뜰 가운데에는 경주 포석정 수로를 본뜬 연못도 있다.
덕수궁 옆에 1892년 지어진 영국대사관저는 개화기 대사관 가운데 현재까지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빅토리아풍 건물인 대사관저로 들어서면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경북 안동 방문 사진도 걸려 있다. 대사관의 ‘서프라이즈’ 공간은 지하에 설치된 영국식 펍 ‘브로턴 바’다. 매주 금요일 밤 주한 외교관들의 사교 공간으로, 대사관 직원들이 자원봉사로 바텐딩을 한다. 닉 메타 부대사는 “주한 대사관 중 바가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 이집트대사관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형태다. 설계자인 건축가 장윤규는 이 건물을 ‘떠 있는 돌’에 은유했다. 돌은 바로 이집트 문명을 다시 재발견하게 한 로제타스톤. 대사관 외벽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내부 1층 로비는 이집트 신전처럼 꾸며져 있다. 장 건축가는 “돌이 자유롭게 떠 있다는 것은 신화적인 상상”이라며 “건물 전체를 상형문자로 뒤덮어 돌이라는 물성(物性)을 제거하고 문자와 기호만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