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이모 씨(73)는 “나는 항암 효과가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강아지 구충제를 투약하지 않기로 했지만 많은 환자들이 구충제를 먹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폐암 환자와 그 가족 등 8만여 명이 가입한 온라인 커뮤니티 ‘숨사랑모임’ 운영진이기도 한 그는 “신약이 나와도 가격이 비싸 환자들이 쉽게 쓸 수가 없다”며 “쉽게 구할 수 있는 강아지 구충제에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하니 절박한 심정에서 이를 투약하는 걸 잘못됐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암 환자들 사이에서 강아지 구충제의 주성분인 ‘펜벤다졸’이 말기암을 치료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면서 보건 당국이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대한암학회는 28일 “동물용 구충제는 동물에게만 허가된 약”이라며 “이를 고용량으로 장기간 투여할 경우 장기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아지 구충제가 항암치료제로 둔갑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말기 폐암으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조 티펜스 씨가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완치했다는 증언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달 초 이런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이 공개돼 조회 수 220만 회(28일 기준)를 넘어섰다. 동물약국에서는 펜벤다졸 성분이 들어간 파나쿠어, 옴니쿠어 등 동물의약품의 품귀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달 23일에도 “펜벤다졸은 사람에게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며 “암 환자는 절대 복용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암 환자들이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 펜벤다졸을 복용해 체중이 늘거나 통증이 줄었다는 후기를 직접 공개하면서 강아지 구충제를 구입하는 환자들이 줄지 않고 있다.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개그맨 김철민 씨도 28일 페이스북에 “펜벤다졸을 4주 차 복용했더니 통증이 반으로 줄고 혈액검사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다. 김 씨도 지난달 말 “강아지 구충제 치료법에 도전하겠다”고 밝혀 ‘구충제 열풍’에 불을 지폈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펜벤다졸 임상시험을 한 적이 없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권정혜 강동성심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펜벤다졸’은 항암제 1상 시험도 거치지 않은 물질”이라며 “40년 이상 동물을 대상으로만 사용돼 사람에게는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온라인상에 올라온 환자 후기에 치료 효과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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