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브랜드의 대명사인 샤넬은 해마다 여름이면 프랑스 남부의 대표 휴양도시인 생트로페의 한 호텔을 팝업 부티크로 탈바꿈시킨다. 예술가와 문인, 영화인 등이 즐겨 찾는 휴양지에서 독특한 컬렉션과 풍성한 볼거리를 선보임으로써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대표 휴양지인 부산 해운대에서도 샤넬의 전략을 벤치마킹해 대형 매장을 운영하는 의외의 회사가 있다. 바로 침대 회사인 한국 시몬스다. 이 회사는 2017년 8월 소위 ‘부산의 베벌리힐스’라 불리는 달맞이길에 ‘시몬스 갤러리 해운대’점을 열었다. 너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2층 테라스에 휴양지 특급호텔 느낌의 침실 쇼룸을 꾸며 놓은 것은 물론이고 시몬스 침대의 150여 년 역사와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브랜드 전시 공간까지 마련해 놓고 색다른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 서울 강남도 놀라게 한 시몬스 해운대 매장
처음 시몬스가 달맞이길에 580m²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고 했을 때 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보통 침대 매장은 백화점 아니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 부산 동구 좌천동 등 이른바 지역별로 유명한 ‘가구거리’에 들어서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각종 갤러리와 카페, 고급 빌라가 밀집해 있는 곳에 침대 매장을 낸다고 하니 다들 어이없어 했던 것. 그러나 시몬스에서 전략기획 및 브랜드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김성준 상무는 “시몬스를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리려면 통념을 깨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매출 성과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관점에서 입점 전략을 세워 실행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은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매장 입구부터 커다란 파란 대문으로 시선을 끄는 시몬스 갤러리 해운대점은 현재 달맞이길을 찾는 휴양객들의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플레이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매출 측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시몬스의 최고가 제품인 ‘뷰티레스트 블랙’(600만∼2000만 원대)의 경우 올 7, 8월 두 달간 전국 20개 취급 매장에서 총 52억 원어치가 팔렸는데, 해운대점에서만 무려 12억 원어치(23%)가 판매됐다. 이는 논현점(18억 원)에 이은 전국 두 번째 실적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10억 원)마저 앞선다.
김 상무는 “처음 ‘생트로페의 샤넬’ 콘셉트의 침대 매장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다들 터무니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공간을 제품 판매 장소로만 보지 않고 브랜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 침대와 상관없는 전시회 열며 20, 30대 젊은층과 소통
시몬스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위한 공간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는 곳은 비단 해운대 매장만이 아니다. 지난달 경기 스타필드시티 부천에 문을 연 시몬스 매장의 경우, 아예 입구부터 시몬스 브랜드 히스토리를 접할 수 있는 헤리티지 앨리(Heritage Alley)를 전면 배치했다. 복합 쇼핑몰에 위치한 매장 특성상 유동 인구가 많아 매장에서 침대에 누워보고 체험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고객들을 위해 아예 입구와 매장 내부 공간을 분리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작년 9월 시몬스 본사의 연구·생산시설이 있는 경기 이천시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무려 10만여 명이 방문한 이곳에선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는데, 특이한 건 침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주제로 전시가 꾸며진다는 점이다. 가령 가장 최근 전시회는 청춘들의 자유로움과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서핑’이 주제였다. 보드와 슈트 등 서핑 관련 아이템을 진열해 놓은 것은 물론이고 서핑 관련 영화, 음악, 사진, 책 등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 김 상무는 “제품을 대놓고 홍보하는 상업적 접근을 지양하고 20, 30대 타깃 고객들의 관심 사항을 공유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본사가 매장 운영 고정비 전액 지원하는 ‘위탁 대리점’ 제도
시몬스는 올해 초부터 본사가 임차료, 관리비, 인테리어 비용 등 매장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를 100% 지원하는 ‘위탁 대리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 대리점주 가운데 매출 실적도 좋고 서비스도 뛰어나지만 자금력 부족과 임차료 부담 등의 이유로 변두리 상권에서 영업하는 이들을 핵심 ‘노른자’ 상권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점주는 영업을 통해 판매 수수료를 가져가는 형태로, 초기 투자비용(330m² 규모 매장 기준 대략 5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진열 제품도 본사가 철마다 무상으로 교체해 주기 때문에 점주 입장에선 재고 부담도 덜 수 있다. 본사 입장에서도 위탁 대리점의 인테리어와 제품 진열을 책임지고 담당하게 되므로 보다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를 할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시몬스 맨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위탁 대리점은 현재 17개에 달한다. 특히 17일 서울 강동구 길동에 문을 연 ‘시몬스 맨션 길동점’은 부친이 운영하던 대리점을 아들이 이어받아 규모를 2배로 키워 위탁 대리점으로 전환한 경우다. 김 상무는 “본사와 대리점주 간 장기적인 동반자로 협력해 나가는 대표 사례”라며 “내년까지 시몬스 맨션을 총 30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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