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에 결혼식에서 주례를 봤다. 처음은 아니었다. 사회를 맡은 게 4번이고 주례를 서는 것은 2번째였다.
한국에서 처음 참석한 결혼식은 내가 살던 경기 파주시 금촌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가족의 큰딸이었다. 파주시 교육청에서 파견한 원어민 교사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같이 살던 미국 원어민과 잘 어울리지 못해 매일 퇴근 후에 집보다 밖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근처 슈퍼마켓 그리고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서투른 한국어를 연습하고 그곳 직원들과 친구가 됐다. 슈퍼마켓 가족은 나를 입양이나 한 듯 설날에 초대해 떡국을 대접하는 등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그 집 결혼식 가족사진 촬영 때는 맨 뒷줄에 섰다. 좋은 추억이다.
그 뒤로도 많은 결혼식에 참석했다. 내가 보기엔 한국 결혼식은 짧다. 그리고 떠들썩하다. 내빈들이 손뼉 치는 순간이 많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뒤편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직계가족이 아니면 예식 전에 식사부터 하기도 한다. 호주에서 그다지 많은 결혼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엄숙하고, 조용했으며, 길었고, 느렸다. 호주와 네덜란드에서는 주례자가 정부에서 면허를 받아야 한다. 주례는 법의 강권을 발동해 신랑, 신부를 결혼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예식 전후로 관공서에서 간단한 법률상의 절차를 마치면 되므로 부부가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면 된다.
사회자나 주례로 서는 것은 큰 영광이다. 그만큼 신랑, 신부와 만나 예식 대본을 상의하고 점검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번에는 한국인 신부의 아버지가 주례사를 미리 한국어로 쓰고 사전 모임 때 건네며 겸손하게 “이 글을 무시하고 다시 처음부터 써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역지사지’를 주제로 한 감동적인 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보다 아내가 늘 세뇌시키는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구절은 이번에는 쓰지 않았다.
내가 주례를 서고 다른 외국인 친구 라이언이 사회를 맡았다. 둘 다 영어가 모국어지만 한국말도 한다. 대망의 날에는 같은 차를 타고 가며 대본 연습을 했다.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전의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가능한 한 많은 식을 치르려다 보니 한국 예식장은 어떤 면에서는 약간 공장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 예식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한 예식장 직원이 경고를 했다. “너무 길면 마이크를 끊을 수 있다. 30분밖에 없다”고. 신랑, 신부 양측을 위해 영어, 한국어 두 언어로 진행해야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예식을 시작했다.
라이언이 드디어 사회를 시작하고 신부가 등장하기 전에 주례인 나를 소개했다. 연단에 서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설치된 장식 때문에 라이언이 안 보였다. 나중에 라이언에게 들었지만 내 말이 하나도 안 들렸다고 한다. 사실 나도 라이언 말이 잘 안 들렸다.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언제 말이 끝났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예식을 진행했다. 다행히도 우리 둘 다 직업상 공식 석상에 설 일이 많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고 ‘큰’ 실수 없이 예식을 마쳤다. (나의 실수: 신랑에게 신부 손가락에 낄 반지를 줘야 할 때 당황해서 먼저 신랑 반지를 건네줬다. 사회자의 실수: 사회용 대본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기는 바람에 막 등장한 신랑, 신부에게 관객을 향해 행진을 시키는 멘트를 하고 말았다. 눈치 빠른 관계자가 이를 재빨리 멈추고 대본을 앞으로 넘겨줬다.)
라이언과 내가 다소 불완전한 한국어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오히려 그 때문이었을까?) 보통의 결혼식보다 내빈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여 주었다.
이번 결혼식은 친구의 결혼식이라 주례는 내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오히려 한국 신부 부모님으로부터 독특한 선물을 받았다. 사회자인 라이언과 주례인 내게 황금으로 만들어진 열쇠를 주었다. 너무 멋졌다! 글을 끝맺기 전에 한 번 더 이 말을 하고 싶다. 로버트 씨, 재인 씨,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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