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꿈을 이룬다는 말을 믿고 버텼다. 테스트를 통과했을 땐 눈물이 났다….”
최근 신규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로케이가 실시한 A320의 운항 가능 테스트를 통과한 최용덕 부기장(43·사진)은 3일 “조종사의 꿈을 꾼 지 14년 만에 꿈을 이뤘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 부기장은 2004년부터 국내외 금융회사에서 파생상품과 채권, 외환 세일즈 등의 일을 하며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2005년 친구가 조정하는 경량비행기를 타고 호주 시드니 항구를 비행한 이후 그는 막연하게나마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그러나 기존 직업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금융업도 하고 싶은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에 선뜻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2012년에 회사를 잠시 쉬면서 미국에서 경량비행기 면허를 땄다. 휴가 등을 이용해 미국 전역도 틈틈이 비행했다. 결국 2015년 주변의 만류를 뒤로하고 직업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있는 조종 학교에 들어갔다.
최 부기장은 “성과 압박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비행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깨닫고 비행을 업으로 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미국 샌디에이고와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9개월 넘게 훈련을 받은 끝에 2016년에 A320 기종 면허를 땄다.
최근 항공업계에는 최 부기장처럼 30, 40대 나이에 조종사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LCC에서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부기장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승무원을 하던 사람부터 공무원, 사업가, 대기업 직원, 애널리스트 등 출신도 다양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 조종사는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어가는 데다 65세 정년이 보장된다. 정년 이후에도 외국에서 10년 정도 추가 근무할 기회도 적지 않아서 직장인들 중에 조종사라는 전문직으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종사 면허를 딴다고 모두 항공사에 취업하는 건 아니다. 경력과 자격을 갖춘 기장은 부족하지만 부기장이 되려는 지원자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 부기장 역시 A320 기종이 있는 항공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40대로 접어든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그는 다행히 금융권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에어로케이를 설립하면서 사실상의 창업멤버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부기장 자격을 갖춘 한국 국적의 조종사는 연간 500∼600명 배출된다. 이 중 국내 항공사에 취업하는 인원은 100∼200명이다. 일부는 동남아와 중동 등 해외 항공사로 가거나, 50인 미만 소형기를 운항하면서 비행 경력을 쌓는다. 최근 신규 LCC 3곳이 생기면서 수요가 늘었지만 여전히 부기장급의 일자리는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조종사가 되려는 직장인들은 면허를 따는 데 1억∼2억 원이 들어가는 데 비해 취업은 쉽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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