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독도 인근 바다에 추락한 소방헬기 ‘영남1호(기종 EC225)’는 4차례에 걸쳐 비상부주(浮舟) 점검을 받았지만 추락 당시엔 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상부주는 헬기가 강이나 바다 등에 불시착할 경우 자동으로 펴져 탑승자들이 구조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다. 사고 헬기엔 납작하게 접힌 비상부주가 앞뒤 좌우에 하나씩 모두 4개가 장착돼 있었다.
소방청이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소방헬기 비상부주 점검 내용’에 따르면 영남1호는 2016년 3월 도입 이후 모두 4차례에 걸쳐 비상부주 점검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점검 시기는 2016년 12월 19일과 2017년 12월 18일, 2019년 3월 23일, 5월 9일이다. 올해 5월 마지막 점검에서는 비상부주의 내부 부품인 실린더에서 결함이 확인돼 부품을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린더 안에는 헬륨가스가 들어 있는데 비상시 부주를 부풀게 만들어 헬기를 물 위에 떠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2010년 4월 17일 인천 소청도 인근 바다에 해군 소속 링스헬기가 불시착했을 때 비상부주가 펼쳐지며 탑승자 3명이 모두 구조된 적이 있다.
헬기 정비사 A 씨는 “인양된 영남1호의 동체를 봤을 때 비상부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헬기가 빠르게 추락하다 보니 비상부주 센서 감지기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양된 사고 헬기의 비상부주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있었다. 4일 강원 동해시 동해해양경찰청에서 진행된 영남1호 추락 사고 관련 설명회에서 성호선 영남119특수구조대장은 “비상 부유장치가 지금 풍선 같은 게 늘어져 있는 상태”라며 “풍선에 바람을 넣는 실린더가 있는데 이 실린더에 바람이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조사위는 비상부주가 원래 불량이었는지, 아니면 추락 당시의 충격으로 파손된 것인지 등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현재 소방청이 보유한 소방헬기 29대 가운데 17대는 비상부주 등의 장치가 없어 해상 운항이 불가능한 헬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법에 따르면 헬기의 해상 운항이 가능하려면 비상부주가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어야 한다. 비상부주가 없는 헬기가 해상에 추락하면 대개 1, 2분 안에 완전히 침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잠수구조함인 청해진함은 4일 바다 밑 78m 깊이에 있는 헬기 꼬리 부분에서 사고 당시 운항기록과 음성이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이는 블랙박스와 음성기록장치를 발견했다. 해군 특수전전단 제병렬 참모장은 “119라 적힌 (꼬리) 부분에 블랙박스와 보이스레코더가 같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5일 오전 실종자 수색을 먼저 한 뒤 헬기의 꼬리 부분을 인양해 블랙박스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일 인양된 사고 헬기 동체는 4일 오전 1시경 경북 포항신항으로 옮겨졌다. 국토부 조사위는 사고 헬기가 김포국제공항으로 이송되면 비상부주의 작동 여부 등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수색 당국은 기상 악화로 중단됐던 수중 수색을 4일 오후 재개했으나 실종자를 추가로 발견하지는 못했다. 수색 과정에서 헬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 2점을 수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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