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에 사는 송모 씨(38·여)는 지난달 27일 시어머니(63)와 영화관을 찾아 ‘82년생 김지영’(김지영)을 함께 봤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김지영은 시댁 식구와 함께 보기엔 껄끄러운 영화로 꼽힌다.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꼬집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1일 한 맘카페에 올라온 ‘시어머니와 김지영(관람)은 좀 아니겠죠’라는 제목의 글에 ‘비추천이다’, ‘보고 나면 분위기가 싸해질 거다’ 등의 댓글들이 잔뜩 달렸다. ‘모험을 좋아하면 도전해 보라’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송 씨의 ‘모험’은 꽤 성공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시어머니가 먼저 송 씨에게 “차를 한잔 마시자”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 시어머니는 송 씨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들려줬다. “우리 세대는 여자가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고 살림만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너희 세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며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를 격려하기도 했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송 씨는 평소에도 자신을 배려해 주는 시어머니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날 느낀 기분은 색달랐다. 송 씨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어머니가 나를 이해해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벅찼다”고 했다.
김지영이 50, 60대 장년 여성들 사이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의 30대 여성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 다뤘다는 이 영화는 고부지간, 모녀지간처럼 세대가 다른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측면이 있다. 영화를 통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이 친정 엄마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경북 경주시에 사는 이수연 씨(29·여)는 지난달 24일 친정 엄마(53)와 함께 김지영을 관람했다. 이 씨와 엄마는 영화를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 이 씨는 “나도 아이를 기르는 엄마이지만, 영화 속 김지영을 보고 어릴 때 나를 기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며 “어릴 때는 몸이 약한 엄마가 왜 자꾸 아플까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엄마가 되는 건 원래 저렇게 아픈 과정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는 한 여성은 “시어머니와 형님들도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로 살아가다 보니 옆에서 나보다 더 울더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김지영은 여성만의 입장을 다뤘다는 점을 두고 일부에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봉 전부터 ‘남성에게는 1점짜리, 여성에게는 10점짜리 영화’라며 남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분열의 영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영은 오히려 ‘통합의 영화’가 될 만해 보인다.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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