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태국 방콕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가진 ‘환담’에 대한 양국 정부의 발표에는 ‘온도차’가 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고위급 협의’를 제안하자 아베 총리가 “모든 방법 통한 해결”로 화답했다고 강조한 반면,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가) 청구권협정 준수라는 일본 정부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번 정상 회동은 사전준비 없이, 짧은 시간 대화한 것이라는 한계를 감안해도 양 정상이 13개월 만에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 노력이 주효했고 아베 총리 측도 편안한 표정으로 응했다. 사실 양 정상이 이날 ‘양국관계 중요성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에 공감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일이 걸린 감마저 있다.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조금씩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2일 이낙연 총리의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에 이어 한일의원연맹 총회(31일), 문희상 국회의장의 방일(3∼6일) 등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 개선에 작은 돌 하나씩이라도 보태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일 간 갈등은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올해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8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악화일로를 그려왔다. 특히 23일 0시 종료되는 지소미아는 가장 촉박한 과제로 다가와 있다. 방콕 회동의 대화 동력을 살려나가면서 지소미아를 유지하고 일본의 수출 규제를 거둬들일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 갈등의 뿌리가 된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서는 한일 정부 간 물밑 협상에서도 뾰족한 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일본과 공유해야 한다.
문 의장은 어제 와세다대 강연에서 한일 기업과 국민 기부금을 재원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일본 측 반응은 차가웠지만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 이런저런 해법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외교당국 간의 물밑 접촉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민간의 지혜를 망라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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