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 민낯 보여준 ‘타다’[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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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철폐 말 믿다간 검찰 법원 불려 다녀야 할 판
홍남기 부총리, 이제라도 아닌 정책에 ‘No’ 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타다’가 논란이다. 검찰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불법영업으로 최근 기소했다. 1년 넘게 차가 굴러다니는 동안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합법인지 불법인지 말이 없었다. 공개적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듯하다. 청와대도 법무부를 통해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규제혁신 총괄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남의 말 하듯 “당황스럽다”라고 할 게 아니다. 규제개혁을 법원에 맡길 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공식 의견을 내야 한다.

‘타다’ 기소는 규제혁신을 둘러싼 현 정부의 속내와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규제혁신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표 떨어질 규제개혁은 없을 것 같다. 의료업계가 반대하는 원격진료, 숙박업계가 반대하는 공유숙박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공유차량 서비스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정신 건강을 위해 좋을 듯싶다. 외쳐 봐야 쇠귀에 경 읽기이고 기대해 봐야 희망 고문일 뿐이다.

정부는 나열하지 않은 규제는 모두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립서비스였다. 이 말 믿고 새로운 사업 시작했다가는 검찰 법원에 불려 다닐 ‘타다’ 꼴이 나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면 경제부총리가 총대를 메야 한다.

경제기획원에서 시작해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까지 이름이 4번 바뀌는 동안 모두 출입기자로 취재한 경험이 있다. 가까이서 지켜본 경제 관료들은 재정건전성을 마치 신앙처럼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선배들이 의원들과 싸워가며 달래가며 튼튼하게 지킨 나라 곳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예산 따내기에 혈안인 의원들도 재정건전성은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2015년 9월 9일 당시 문재인 야당 대표는 2016년 예산안을 두고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 왔던 국민총생산(GDP) 대비 40%가 깨졌다”며 “국가채무를 국민과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예산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올해 5월 16일 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게 “40% 근거가 뭐냐”고 되물었다.

정치인인 대통령의 뒤집기 발언은 그렇다고 쳐도 경제부총리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확장도 어느 정도다. 경제성장률이 잘해야 2%대인데 재정지출 증가율은 2년 연속 9%가 넘는다. 내용은 더 문제다. 보건·복지·노동 지출은 12%대 증가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는 “확대되는 재정을 어디에 써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묻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답한다. 다만 늦은 밤 홀로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왜 이런 말을 대통령 앞에서, 공개 회의석상에서 하지 못하는가.

정책의 실패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선거의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정치와 권력의 속성이다.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정책실장, 정치인 출신 장관들에게서 2∼3년 뒤, 혹은 다음 세대에나 효과가 날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홍 부총리도 다음 달이면 벌써 취임 1년이다. 경제부총리의 평균 임기가 1년 1개월 정도다. 당장 나가도 크게 아쉬울 게 없는 기간이다. 이제라도 눈치 보지 말고 선배 동료들에게, 무엇보다 국가 경제와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작점은 오랜 경제 관료 경험에서 봤을 때 분명히 아닌 것에 대해서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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