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록과 국악의 파격 앨범 ‘지뢰’ 낸 여창가객 강권순-송홍섭씨
정가의 악보화 시행착오 끝 성공… 해외 재즈그룹도 언제든 연주 가능
“이 음반은 마침표이면서 물음표… 정가 실험은 그침없이 계속될 것”
파격은 쉽지만 혁명은 어렵다. 단군 이래 등장한 수많은 국악 퓨전 음악 중에서도 유별나게 괴괴하고 모난 돌이 8일 세상에 나왔다. 강권순×송홍섭 앙상블의 앨범 ‘지뢰(地(뇌,뢰)): Sounds of the Earth’다.
최근 만난 여창가객 강권순 씨(50·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와 베이시스트 송홍섭 씨(65)는 “국악계 원로들에게 혼쭐이 날까 봐 음반 나오기 전부터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뢰’는 올해 한국 음악계 최고의 문제작이다. 뜻밖의 리듬과 정서가 지뢰(地雷)처럼 매설돼 있다. ‘수양산가’ ‘길군악’ 등 우리 고유 정가(正歌)의 등뼈를 칡넝쿨처럼 휘감는 베이스기타, 드럼, 피아노, 신시사이저 연주가 절경이다.
핵심은 리듬과 박자. 대체로 느리고 호흡이 긴 정가는 듣기에는 담백하지만 박자 세기가 고약하다. 가창자의 호흡에 따라 박자 체계가 4차원 공간처럼 휘어져서다.
2016년 송 씨는 “정가를 대중음악의 틀에 넣어보고 싶다”는 강 씨의 의뢰를 받고 정간보를 파고들었다. 강 씨가 녹음해준 노래도 수없이 반복 재생했다. 긴 호흡에 내재한 리듬과 그루브를 인디애나 존스처럼 발굴해야 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부터 ‘삐삐밴드’의 프로듀서까지 맡았던 송 씨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지난한 작업이었다.
“여러 리듬 꾸러미를 만들어 노래에 얹는 시행착오를 숱하게 반복했죠. ‘계면조 편수대엽’은 4분의 30박자로 맞췄어요. ‘우조 이수대엽’은 8분의 48박자가 됐고요.”(송홍섭)
송 씨의 오선보를 통해 이제 정가는 기록됐다. 머나먼 북유럽의 재즈 그룹이 와도 구전심수(口傳心授) 없이 악보만으로 소리꾼과 즉각 교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강 씨는 “평균율에서 벗어나는 음까지 곧잘 사용하니 서양음악 관점에서 보면 저는 음치이자 박치”라며 “이번 작업을 위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서양식 박자를 셌다”고 했다.
영국 밴드 ‘킹 크림슨’이나 미국 그룹 ‘리턴 투 포에버’를 연상시키는 이 난해한 앨범은 라이브 녹음이다. 7월 23일 송 씨가 운영하는 경기 가평뮤직빌리지에서 한 방에 끝낸 공연 겸 녹음. 실황음반임을 믿기 힘들 정도로 합이 정교하다. 서수진(드럼), 남메아리, 박은선(이상 건반)의 젊은 ‘재즈 드림팀’도 강 씨의 절창을 받쳐냈다.
‘우조 이수대엽’에는 21세기 해학도 담았다.
“노래 속 여인은 베를 짜며 수백 년째 남자만 기다렸습니다. 고구마 삼킨 듯한 답답함을 수동적 한이 아닌 욕설로 풀어냈죠.”(강권순)
오른쪽 스피커에서 나는 작은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구십팔, 삼육십팔, 육삼십팔….”
두 사람은 “이번 음반이 3년간의 마침표지만, 작은 느낌표이자 커다란 물음표”라고 했다.
“2004년 제 앨범 ‘천뢰(天(뇌,뢰))’가 하늘에서 내린 소리 그대로의 정가를 담았다면 이번엔 땅에서 되받는 울림(지뢰)을 만들어 냈죠. 완성판인 ‘인뢰(人(뇌,뢰))’가 나올 때까지 이 실험은 현재진행형입니다.”(강권순)
‘지뢰’는 14일 CD와 LP로 발매된다. 9, 10일 옛 서울역에서 열리는 서울레코드페어에서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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