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선원 3명, 선장 살해 ‘선상 반란’… 동료 15명도 차례로 살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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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살인’ 北주민 2명 추방]北오징어잡이배 잔혹극 무슨 일이

“돼지 잡듯이 하면 된다.”

지난달 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동해 바다에 떠있던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에서 선원 A 씨(22)는 동료 B 씨(23)와 C 씨(나이 미상)에게 ‘선장을 죽이자’며 이렇게 말했다. 선장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이 3명은 도끼와 망치를 나눠들고 선장을 포함한 동료 선원 16명을 무자비하게 잇따라 살해했다. 범행 후 육지에서 오징어를 내다팔던 C 씨가 북한 당국에 체포되자 A, B 씨는 지난달 31일 목선을 타고 도주했다. 북한 당국에 쫓기던 이들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해 사흘에 걸친 해군의 추적 끝에 붙잡혔다. 한 편의 범죄 영화처럼 흘러간 이들의 남하는 정부가 7일 판문점을 통해 이들을 북한으로 추방하면서 뒤늦게 공개됐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붙잡아 조사하는 동안 아무런 발표 없이 침묵하다 5일 만에 이들을 북한으로 전격 추방하는 과정에서 숱한 의혹을 남겼다.

○ 주민 3명이 선장과 동료선원 16명 살해


해군에 붙잡힌 A, B 씨를 포함한 북한 선원 19명이 함경북도 김책항에서 출항한 건 8월 15일. 길이 15m짜리 오징어잡이 목선을 탄 이들은 두 달 넘게 러시아와 북한 해역, 황금어장인 대화퇴 해역 등을 돌며 조업하는 동안 선장에게 지속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조사과정에서 주장했다. A 씨는 한밤중에 B, C 씨와 공모했고 결국 이들은 둔기를 나눠 들었다.

A 씨가 혼자 뱃머리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동료 선원 1명을 둔기로 살해하면서 범행은 시작됐다. 나머지 두 사람은 ‘이왕 벌어진 일이니 할 수 없다’며 배 뒤편으로 달려가 경계근무를 서던 다른 동료 1명을 둔기로 내려친 뒤 곧장 조타실로 달려가 휴식 중이던 선장을 육탄전 끝에 살해하고 시신 3구를 바다에 버렸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범행이 발각되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 판단한 이들은 나머지 동료 13명을 모두 죽이기로 뜻을 모았다.

무기를 갖고 있어도 3명이 13명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C 씨가 자고 있던 동료를 2명씩만 깨워 각각 A 씨가 기다리던 뱃머리와 B 씨가 자리 잡은 배 뒤편으로 보냈다. A 씨와 B 씨는 C 씨가 깨워 보낸 동료 선원 2명씩을 살해해 시신을 바다에 버린 뒤 배 바닥을 청소하기를 반복했다. 해가 뜨기 전 배에 남은 선원은 이 3명. 범행을 마친 이들은 별다른 상처조차 없었다고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 북한 피해 남하…범행 들통 나 닷새 만에 추방


이 3명은 일단 김책항으로 돌아가 그동안 잡은 오징어 등을 팔아 자금을 마련한 뒤 압록강 접경지인 자강도로 도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C 씨가 배에서 내렸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되자 A, B 씨는 배를 타고 곧장 남하했다. 이들이 탄 목선은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13분경 NLL 남쪽 10여 km 지점까지 내려왔다가 대잠초계기 P-3에 적발돼 북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우리 군은 그 후부터 지속적으로 목선의 동향을 추적 감시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인 1일 오전 3시 38분경 다시 NLL을 넘은 이들은 귀순 의사를 묻는 방송이나 경고 사격도 무시하고 한국 땅을 향해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은 결국 2일 오전 10시 16분경 해군 특전요원에게 제압당해 동해군항으로 압송됐다.

붙잡힌 선원 2명은 중앙합동조사팀 신문 초기 살인 사건을 숨기고 귀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북한이 선원 16명을 죽인 범인 2명을 애타게 쫓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집중 신문하자 범행을 털어놨다. 정부는 이들의 범행이 극도로 흉악한 데다 귀순 의사를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체포 닷새 만인 7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추방 과정에선 북한에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한 이들이 자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경찰이 동행했다.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은 브리핑에서 “국정원의 사건 보고를 받고 영화 ‘황해’가 생각났다”며 “이런 사람들이 귀순해 우리 국민 속에 섞인다면 너무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조동주 djc@donga.com·한기재 기자

#선상 살인#북한 주민#오징어잡이배 잔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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