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프로듀스 시리즈[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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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을 잃고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리라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손바닥뼈가 상할 때까지 박수를 쳤지만… 들리지 않았죠. 그렇게 포기해 가던 어느 날, 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생 누워 있거나, 혹은 일어선다. 그리고 달려간다.”

▷2017년 6월 미국의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서 맨디 하비(29)라는 청각장애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가수가 꿈이었지만 선천성 질환으로 18세에 청력을 잃었고, 다니던 음대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튜너기 바늘을 보며 음정을 맞추고, 바닥의 진동을 통해 반주의 박자와 리듬을 느끼며 노래하는 방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신발을 벗은 맨디는 자작곡 ‘트라이(Try)’를 불렀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출연시켜 가공되지 않은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변두리 휴대전화 가게 영업사원, 자폐증을 앓는 시각장애인, 84세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깜짝 놀랄 실력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듦을 이겨냈을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런 꾸미지 않은 감동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도 슈퍼스타 K, 프로듀스 시리즈 등 유사 프로그램들이 제작됐다. 초창기에는 노숙인으로 지내면서도 성악가의 꿈을 키운 최성봉 씨 등도 발굴됐으나, 돈과 시청률에 매몰된 관련 업체들로 인해 점차 연예인 지망생들이 재주를 뽐내는 장으로 변질돼 갔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제작한 CJ ENM의 음악전문채널 엠넷(Mnet)의 PD 2명이 최근 구속됐다. 특정 후보가 합격하게 투표 결과를 조작하고, 연습생을 출연시킨 기획사로부터는 유흥업소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았다고 한다. 구속된 PD들은 최종 라운드에 오른 20명의 연습생이 경쟁도 하기 전에 자신들에 의해 이미 순위가 정해진 소위 ‘PD픽(pick·선택)’이었다고 시인했다. 20명을 추리는 과정에서 경연곡을 미리 알려준 정황도 나오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쟁이 있고,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경쟁이 공정하다면 떨어졌더라도 힘을 내 다시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고, 이미 짜인 각본이 존재한다면 누가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까. 한 연예 관련 회사의 나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청소년들에게 가한 상처가 너무나 크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프로듀스 101#아메리카 갓 탤런트#오디션#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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