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기름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요리 수업이 진행 중인 강의실이었다.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며 채소를 볶거나 칼질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만 남학생 한 명이 홀로 싱크대 앞에 서서 열심히 그릇을 닦고 있었다. 자폐증을 가진 학생이었다. 보조교사 제틴더 해슬 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지켜보며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돕고 있었다. 캐나다는 ‘장애인의 천국’으로 불린다. 이곳의 통합교육 현장을 보기 위해 지난달 16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리시의 ‘에콜 파노라마 리지 세컨더리’ 학교를 찾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중고교 과정을 배우는 곳이다.
○ 요리부터 수학까지 장애아-비장애아 함께 공부
농구 코트가 있는 소형 체육관 앞에서 만난 보조교사 엘레나 워스먼 씨는 두 명의 장애 학생을 도와준다. 두 학생이 받는 사회영어, 과학, 수학, 체육 수업 등에 동행한다는 그는 “뇌전증(간질) 등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어서 수업 도중 의료적인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즐겁다”며 활짝 웃었다. 이 밖에 목공예, 재봉틀 교실 등 비장애 학생이 받는 대부분의 수업에 장애 학생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학교 측에 따르면 현재 이곳의 등록 학생 1650명 중 장애인은 150명, 보조교사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은 25명이다. 장애 학생들만을 위한 별도의 수업도 있다.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비장애 학생들과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는 수업들이다. 필요에 따라 장애 학생들을 위한 지원팀도 꾸려진다. 이 학교 교감 크리스틴 파와르 씨는 “장애 학생을 위해 정교사와 보조교사, 리소스티처(신체 또는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의 읽기 및 쓰기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둔 전문 교육자), 장애치료 전문가, 장애 학생 부모 등으로 팀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주 정부가 지원한다.
에콜 파노라마 리지 세컨더리의 교육 과정은 서리시 교육청의 지침에 따른다. 서리시는 밴쿠버시 등이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인구와 학생 수가 가장 많고, 선진적인 교육 정책을 펼쳐 캐나다에서 주목받는 곳이다. 캐나다의 교육 정책은 주 정부가 기본 방침을 세우고, 시 단위의 교육청에서 정한다.
서리시 교육청은 ‘계획에 따른 맞춤형 교육(Learning by Design)’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장애인 교육과 관련해서도 이를 목표로 한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진행된다. 장애 유형을 10개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교사와 전문가, 치료사 등을 확보해 두는 식이다. 하지만 절대 원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다.
서리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리 시내 초등학교에서는 중증장애인을 빼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 일반 학교에서 공동으로 수업을 받는다. 관내 100개에 달하는 초등학교(공립 기준) 가운데 3곳만 중증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로 운영된다. 일반 학교에서는 철저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이 공동으로 수업을 받는 통합교육이 시행된다. 다만 한 학급에 장애인 학생은 2명 이내로 제한한다. 서리시 교육청의 미셸 슈미트 디렉터는 “교사 노조의 요구에 따른 조치”라며 “장애 학생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 통합교육 통해 ‘장애인 천국’ 실현
특수학교에서 교육받는 학생은 24명에 불과하다. 2개 학교는 6명씩, 나머지 1곳은 12명을 수용하고 있다.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중증으로 자해 또는 타인에 대한 공격적 성향이 강해 공동생활에 따른 위험이 크다고 분류된 학생들이다. 이들 학교 중 일부에선 학생 수(6명)보다 교사 수(7명)가 더 많다. 학생 1명당 교사 1명이 전담해서 교육을 진행하고, 전체 수업을 총괄하는 교사가 별도로 1명이 더 있다.
중고교 과정은 조금 다르다. 중증장애인 전용 특수학교(3개)를 포함해 21개의 세컨더리 스쿨이 있는데, 장애인만을 위한 특수학급이 별도로 있다. 초등학교 이하에선 차별 없이 공존하는 삶을 배우고, 중고교부터는 졸업 이후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 등을 익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중고교 과정을 끝낸 장애인 학생은 능력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거나 지역이나 대학 등에 위치한 지원센터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한다.
캐나다를 ‘장애인의 천국’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처럼 잘 짜인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들로부터 차별받거나 주눅 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또 비장애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장애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장애인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배려하는 생활자세가 몸에 배게 만든다. 주밴쿠버 한국총영사관의 정병원 총영사는 “캐나다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어 화합이 최우선시되는 곳”이라며 “장애인과 소수 약자 등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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