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클 악몽’ 등 눈물 자주 보여
“멘털 약하다” 걱정도 불렀지만… 솔직한 표현, 카타르시스 효과
결코 포기나 실패의 눈물이 아닌 오뚝이처럼 희망 심어주는 계기
123골을 터뜨려 ‘차붐’ 차범근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66)이 갖고 있던 한국인 유럽 최다골(121골) 기록을 경신한 손흥민(27·토트넘)의 별명은 ‘울보’다. ‘손세이셔널’ ‘슈퍼손’ 같은 별명도 있지만 자주 눈물을 보이면서 붙여진 것이다. 이기면 기뻐서 울고 지면 안타까워서 울었다. 이 때문에 일부 팬들은 축구는 잘하는데 ‘멘털’이 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의 눈물은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카타르시스’이면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자양분이었다.
4일 영국 리버풀 구디슨파크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1라운드 에버턴과의 방문경기에서도 손흥민은 울음을 터뜨렸다. 에버턴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시도한 뒤 넘어진 고메스가 큰 부상을 당하자 크게 당황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몸을 덜덜 떨기까지 하면서 고메스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손흥민은 레드카드를 받고 울면서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이 같은 동요에 한동안 제대로 뛸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졌지만 손흥민은 멀쩡했다. 7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4-0 승)에서 2골을 기록해 ‘차붐’을 넘어서면서 고메스의 쾌유를 바라는 ‘기도 세리머니’까지 했다. 혹시나 했던 팬들의 우려를 한방에 날린 세리머니였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손흥민처럼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선수들이 스트레스나 위기 상황을 빨리 극복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강성구 중앙대 스포츠과학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손흥민이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뛰면서 경기력뿐만 아니라 세계적 선수들의 위기 대처와 관리 능력도 함께 학습했기에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손흥민 본인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손흥민은 한 남성 잡지 인터뷰에서 눈물을 자주 보인다는 질문에 “자연스러운 제 자신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면 즐거울 때 즐거움을 공유할 수도 있고 슬퍼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면서 위로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손흥민은 결정적인 무대에서 눈물을 많이 보였지만 그 다음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때는 16강 탈락이 확정된 뒤 펑펑 울었다. ‘울보’라는 별명이 붙여진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후반 추가시간 50m 넘는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 두 번째 골을 넣으면서 역사상 최초로 독일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침몰시키고 ‘카잔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1-2로 석패한 뒤에도 눈물을 닦았지만 3년 뒤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는 후배들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내면서 아시아 정상에 섰다. 손흥민이 흘린 눈물은 결코 포기나 실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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