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사에 원나라 황제의 피란 황궁 건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1일 03시 00분


제주대 국제학술대회서 주장… 용 문양 ‘운용문 막새’ 증거로 제시

제주 서귀포시 법화사에서 출토된 용 문양의 운용문 막새.
제주 서귀포시 법화사에서 출토된 용 문양의 운용문 막새.
제주 서귀포시 법화사에 중국 원나라 황제가 피란했을 때 사용하려던 황궁을 짓다가 중단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로 법화사에서 출토된 봉황 문양의 운봉문, 용 문양의 운용문 막새(지붕에 기와를 입혀 내려온 끝을 막음하는 건축재)가 제시됐다.

강창화 제주고고학연구소장은 최근 제주학회, 제주연구원, 한국몽골학회 등이 제주대 아라컨벤션홀에서 주최한 ‘몽골의 고고학적 유산, 망각을 넘어 공존의 공동기억으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중국 원사(元史)에 따르면 1366년(고려 공민왕 15년·원 순제 32년) 중국 원 황실은 탐라(제주)에 순제의 피란 궁전을 지으려고 원의 목수인 원세 일행 11명을 파견했으며 2년 반 동안 공사를 진행하다가 원의 멸망으로 중단됐다. 강 소장은 피란 궁전을 짓던 곳이 법화사이고 당시 운봉문, 운용문 막새를 피란 궁 지붕에 썼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봉황, 용 문양을 넣은 막새는 당시 왕실 건축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금기품”이라고 설명했다. 법화사에서 출토된 봉황, 용 문양 막새 등 30점은 현재 국립제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법화사는 1279년 중창을 거쳐 높이 7척 이상의 대형 아미타삼존불상 3좌가 안치되고 노비 280명을 거느릴 정도로 위용을 자랑하는 원나라 직할령 탐라의 대표 사찰이었다. 강 소장은 “원이 멸망한 이후 15세기 초 법화사 피란 궁이 허물어졌으며 봉황과 용문양 막새는 길바닥에 깔릴 정도로 원 멸망과 명나라 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원나라는 삼별초를 평정한 직후 1273년 탐라총관부를 설치해 1356년까지 직접 관할했으며 원 멸망 이전까지 탐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법화사는 16세기 후반 폐사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1926년 관음사 포교지소가 들어서면서 중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제주4·3사건으로 전소되는 등 여러 풍파를 겪은 끝에 1987년 지금의 대웅전이 들어섰다.

1983년부터 진행된 7차례의 발굴 조사에서 대형 법당지 등 건물 10동 터와 중창 내력을 알려주는 명문 기와, 청자편 등이 나왔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법화사#운용문 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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