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볼리비아 대통령 “재선거 수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1일 03시 00분


대선불복 시위 3주만에 손들어… “선거위원회 전원 교체하겠다”
경찰 항명에 군부도 “중립” 선 그어, 시위 격화… 국영방송국 점거되기도

8일 볼리비아 정부에 항명을 선언하고 반정부 시위에 가세한 코차밤바 지역 경찰들이 이곳 경찰청 옥상에 올라가 헬멧과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국기를 흔들고 있다. 코차밤바=AP 뉴시스
8일 볼리비아 정부에 항명을 선언하고 반정부 시위에 가세한 코차밤바 지역 경찰들이 이곳 경찰청 옥상에 올라가 헬멧과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국기를 흔들고 있다. 코차밤바=AP 뉴시스
20일 넘게 이어진 대선 불복 시위에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재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주요 도시 경찰까지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항명을 선언하고 반정부 시위에 가세하며 시위가 격화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2006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현 남미 지도자 가운데 최장기 집권 중인 모랄레스 대통령의 입지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날 재선거 실시 의사를 밝히며 “우리는 볼리비아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투표 과정에 참관했던 미주기구(OAS)는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이 획득한 득표율에 부정 혐의가 있다며 재선거를 촉구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날 선거위원회를 전원 교체한다고 덧붙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재선거 실시 결정의 직접적 요인은 최근 거세진 반정부 시위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달 2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 결과 모랄레스 대통령이 47.08%의 득표율로 4선 연임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개표 개시 전부터 선거 부정 의혹 등이 제기됐다. 이후 모랄레스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행정수도 라파스 등 여러 도시에서 벌어졌다. 현재까지 20세 청년 등 3명이 시위 현장에서 숨졌으며 300명 이상이 다쳤다. 이런 상황에서 시위대는 급기야 9일 볼리비아 국영 방송사인 ‘볼리비아TV’와 라디오 ‘파트리아 누에바’를 점령하고 방송 송출을 중단시키는 공세적인 행보에 나섰다.

특히 최근 주요 도시의 경찰이 반정부 시위에 동참할 것을 선언해 현 정부에 타격을 줬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9일 대통령궁을 지키던 수십 명의 경찰을 비롯해 라파스와 수크레 산타크루스 등 주요 도시의 경찰이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근무지를 이탈했다. 한 경찰관은 가디언에 “정부는 시민을 탄압하는 데 우리를 이용할 수 없다”며 “우리는 그 어떤 정당이나 정부에도 속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시위대는 “경찰,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이들을 환영했다.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 반정부 시위대 대표는 트위터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시민의 편에 서 준 경찰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현재 볼리비아 군부도 대통령과 선을 그었다. 윌리엄스 칼리만 군 참모총장은 “정치 문제는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전채은 chan2@donga.com·조유라 기자
#볼리비아#대선불복 시위#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재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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