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처럼 살던 중년여성 윤희, 첫사랑 찾는 과정서 자기내면 만나
희생치러낸 중년들 인생 즐길 자격
“바로 이웃의 이야기처럼 써내려간 게 놀라웠어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첫사랑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가 딸 새봄(김소혜)과 함께 설원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의 시나리오에는 여백이 많다. 이 영화를 한 편의 시로 완성시킨 것은 오랜 세월 묻어둔 감정을 따라 조심스레 흔들리는 배우 김희애의 눈빛이다.
올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14일 개봉한다. 1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서 만난 김희애는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느낌이라는 시사 후기를 보고 너무 기뻤다”며 말문을 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숨죽여 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들이 서로 토닥여주고, 위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그림자처럼 살던 윤희는 첫사랑을 찾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고 한발 더 나아간다.
“한번 돌아보세요. 자기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요. 특히 중년 이후에는 자신을 위해서 오롯이 집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생을 치러내 충분히 인생을 즐길 자격이 있는 ‘윤희’처럼요. 더 일찍 깨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요.”
김희애도 나이가 들며 배우나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는 친구를 안 만나면 외롭고 우울했는데 요즘은 만나면 우울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충만하게 느껴져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맛보는 것 같아요.”
‘윤희’에 몰입하기 위해 그는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책과 영화를 보며 담금질을 했다. 그 덕에 중압감 없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나 ‘쓰리 빌보드’의 샘 록웰 등 최근 흠뻑 빠져 본 영화와 배우들을 열거할 때는 소녀처럼 설레는 표정이 묻어났다.
데뷔 36년 차인 김희애는 워킹맘 경찰로 변신한 드라마 ‘미세스 캅’(2015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재판을 주도하는 여행사 사장이었던 ‘허스토리’(2017년) 등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중이다.
“나문희 김혜자 선생님을 보면서 안심하기도 해요. 제가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최근 여성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늘어나는 데 대해 그는 “작은 소용돌이가 많이 일어나서 자리를 잡고 다른 시도가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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