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어제 저녁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들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른바 ‘4+1’ 협의체가 마련한 512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여야는 막판 협상에서 513조5000억 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에서 1조6000억 원을 순삭감하는 데까진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에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여당이 한국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본회의를 소집해 예산안을 처리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당 새 원내지도부 선출로 조성된 휴전 상태가 다시 깨졌다. 이에 앞서 여야는 어제 오전 원포인트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 어린이교통안전 관련 법안과 파병 연장안 등 16개 안건을 처리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사상 최초로 500조 원을 넘는 초슈퍼 규모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까지 예산안 조정에 의견을 모아야 했지만 의견 조정에 실패한 채 강행 처리됐다. 이 같은 일방적 처리가 관행화되면 협상의 정치는 실종되고 수(數)에 의한 폭주를 용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 우려스럽다.
예산안의 일방 처리는 여야 대결의 첫 고비일 뿐이다. 여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등도 ‘4+1’ 협의체가 정한 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하지만 예산안과 달리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에 대해선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다. 새로 열릴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지루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이고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할 것이다.
선거법은 여야 간에 내년 총선의 규칙을 정하는 룰이다. 선거법을 일방 처리한다면 여야 합의로 이뤄져온 역대 선거법 개정 역사를 욕보이는 일이 될 것이다. 공수처법도 여야의 시각차가 여전하며, 특히 공수처장의 중립성 확보 방안은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여당이 군소야당을 동원해 다수의 힘으로 일방 처리할 경우 정국 파행의 후유증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의 독주가 도를 넘으면 협상과 타협을 통한 의회정치는 실종되고 국정 운영은 파행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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