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들이 나선 이유[오늘과 내일/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리 대학 공교육비 OECD 평균의 65%
연구-투자 가능하게 등록금 동결 풀어야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요즘 대학 총장들이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전국 153개 4년제 사립대 총장 모임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달 15일 등록금 인상 결의를 모았다. 전국의 200개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개편 등 제도 개선 요구를 담은 공문을 이달 초 교육부에 보냈다. 대학교육협의회가 총장들로부터 동의서를 받아 대학 정책에 대한 집단적 의견을 정부에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내년부터 법정 인상률 안에서 등록금 자율 인상 책정권을 행사한다고 결의한 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지난달 정기총회 분위기는 꽤 격앙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안건에는 등록금 인상 결의가 없었지만 총장들의 강경한 요구가 쏟아지면서 결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총장들은 “사립대가 고등교육의 80%를 책임지는데, 왜 우리를 비리 사학으로 모느냐” “언제까지 건의만 할 것이냐”며 행동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재정난을 해소하는 돌파구가 등록금 인상을 통해서만 마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 총장들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선 것은 대학의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대학들은 선진국 대학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연구에 매진해도 모자랄 상황이지만, 현상 유지를 하기도 힘든 처지다. 더구나 사립대는 학령인구 감소와 11년간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이 겹치면서 미래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대학들이 얼마나 쪼들리면 학생들에게 쓰는 공교육비(학교 교육에 투입되는 재원을 재학생 수로 나눈 것)가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칠까.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8000달러(연구개발비 제외)로 초등학생 1만1000달러에 비해 3000달러 적었다. 중고교생(1만2000달러)보다는 4000달러 낮았다. 선진국 대학과 비교해도 큰 격차가 났다. 우리 대학생의 1인당 공교육비는 OECD 평균의 65% 수준으로 비교 가능한 32개 회원국 중 26위로 처졌다.

재정난이 가중되자 대학들은 자구책으로 인건비까지 줄이고 있다. 이 여파로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인공지능(AI) 등과 관련된 교수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벌써부터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정부가 초중등 교육에는 교육복지라는 명분으로 세금을 물 쓰듯 하면서 대학은 등록금 동결로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등록금이 10년 넘게 묶이면서 연봉이 실질적으로는 30% 정도 깎였다”며 “청춘을 바쳐서 공부하고, 해외 유학을 하고,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쉴 새 없이 논문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데 교수 연봉을 대기업 부장 수준으로 묶어두면 어떤 우수 인재가 교수가 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의 한 관계자는 “산업 혁신과 지역 발전의 거점인 대학들이 재정난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다면 큰일이지 않냐”며 “대학 등록금을 국가가 동결시켜 버린 사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 총장들의 집단 움직임은 대학의 어려움을 외부에 알리려는 몸짓이 아닐까 싶다. 일부의 비리를 전체 대학의 문제인 것처럼 매도당한 것에 대한 억울함도 섞여 있는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대학 등록금은 11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고급 두뇌의 산실인 대학이 재정난으로 교육과 연구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한계에 이른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을 보완하는 논의가 필요한 때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대학교#총장#등록금#재정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