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회가치 변화 맞춰 노사관계 새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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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노조 경영 원칙 사실상 폐기
창립이래 “노조 필요 없을만큼 보상”… 복수노조 합법화 등으로 논란 커져
2011년 ‘비노조 정책’ 표현 없애
계열사 10여곳에 노조… 확산될듯

삼성이 18일 자사의 노사관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한 것은 81년간 ‘비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삼성의 정책에 중요한 분기점을 맞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노조 탄압’이라는 논란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기존의 노사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라며 “일부 계열사를 넘어 삼성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여 의미가 크다”고 봤다.


○ 81년 ‘비노조 경영’ 원칙 사라져

1938년 창립 이래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더 큰 보상을 통해 노조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는 ‘비노조 경영’을 고수했다. 1980년대에 노동운동이 거세질 때에도 노조가 없었다. 범(汎)삼성가인 신세계, CJ그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회사에 노동조합을 둬선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삼성 내부에서도 “창업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1985년 이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조가 있는 것이 회사나 종업원을 위해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삼성은 노조가 없어도 사우회, 협동회 등의 조직을 통해 협조가 잘되고 있으며 물질적 정신적 대우에 있어서 다른 회사보다 소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는 2009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비노조 정책’ 설명을 싣고 이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노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합법화되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17일 1심에서 26명에 대해 유죄 판결이 난 삼성물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도 복수노조 설립 움직임이 불씨가 됐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에서도 2012년 제1노조가 결성되는 등 범삼성가의 비노조 경영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비노조 정책이란 표현을 뺐다.

삼성전자에는 올 들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지부 노조가 생겼다. 삼성전자서비스에는 협력사 직원들이 만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산하 지부가 있다가 협력사 직원들이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삼성 내 민노총 노조가 생긴 셈이 됐다. 현재 삼성 계열사 10여 곳에 노조가 설립된 상태다.


○ “강성노조 확산” 우려도

지난해 포스코에 민노총 산하 노조가 결성된 데 이어 삼성전자에도 한국노총 지부가 생겨 사실상 10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모두 상급단체 소속 노조가 들어선 상태다. CJ그룹은 ㈜CJ에는 노조가 없지만 CJ대한통운에는 민노총 지부가 있다. 삼성이 비노조 정책 폐기를 사실상 선언함에 따라 노조 설립이나 가입이 더욱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기업마다 강성노조 활동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임금 및 단체협약 관련 갈등이 생기거나 기업 경영 현안과 상관없이 상급단체와 발을 맞추기 위한 노조의 활동이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러 걱정스러운 면이 있지만 사회적 가치가 변하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노사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기업들의 숙제”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유근형 기자
#삼성#비노조 경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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