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정부, 학계, 경제계를 망라해서 최대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디지털 혁명을 바탕으로 발전한 다양한 기술들이 상호 융합하면서 경제체제와 사회구조를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현 정부도 4차 산업혁명의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는 있었다. 정부 출범 초기 미래 선도 산업의 핵심 기술을 개발·육성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위원회(4차 산업위)’를 설치했다. 애초 4차 산업위는 총리급 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정책실장과 14명의 관련 장관, 그리고 민간 전문가를 포함하는 매머드 조직으로 계획되었다. ‘옥상옥’ 논란도 있었지만 4차 산업혁명과 신산업에 총력 대응한다는 정부의 목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막상 4차 산업위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다. 민간에서 발탁된 장병규 위원장을 총리급 위상으로 보기에는 애매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빠지고 장관도 14명에서 4명으로 축소됐다.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정부 구상은 시작부터 시장의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곳곳에 산재한 규제를 완화하고 기존 산업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조정하는 정부의 역할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간 중심의 4차 산업위가 정부 내 뿌리 깊게 박힌 규제를 없애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 위원장은 임기를 마치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빌리티 혁신과 헬스케어는 꼭 규제를 뚫고 안착시키고 싶었는데 둘 다 잘 안됐다. 모빌리티는 아예 첫 단추도 제대로 못 끼웠다”며 아쉬워했다. 민간 자문기구 수준에 불과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토로한 것이다.
4차 산업위의 지난 2년간 성과도 내세울 게 없다. 앞으로 더 나아질 조짐도 없다. 이대로라면 이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다른 위원회들과 같은 운명에 놓일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신산업을 발굴하고 규제 개혁의 구심점으로 4차 산업위에 거는 기대와 필요성은 여전히 높다.
4차 산업위에 필요한 것은 ‘영속성 보장’과 ‘책임 있는 정책 수행’이다. 이를 위해 현재 대통령 직속 4차 산업위를 국회 상설 기관으로 이관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대통령 임기와 함께하는 ‘떴다방’ 위원회의 폐단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혁신적인 기업인 중심으로 인적 구성을 재편해, 이들이 위원회 내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회는 4차 산업위에서 나온 결과물들이 사장되지 않고 반영되도록 정부 관련 부처와 협의해 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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