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처음부터 이렇게 잘살았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근대식 주식회사로 꼽히는 경방이 출범한 1919년 이후 100년간 한국은 농업국가에서 경공업을 거쳐 중화학, 첨단 전자산업 국가로 도약했다. 작년 기준으로 경제 규모 세계 12위, 1인당 국민소득은 전쟁으로 폐허만 남은 1953년 67달러에서 3만2000달러로 477배나 늘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기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섰던 대기업들의 역할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공과를 떠나 대한민국 경제의 역사는 대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민간위원 30명과 함께 선정한 ‘한국 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명장면 100개 가운데 1위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산업 진출을 천명한 도쿄선언, 2위가 포스코(옛 포항제철)의 첫 쇳물 배출, 3위가 독자개발 승용차 포니의 탄생이었다. 삼성의 반도체 진출을 두고 인텔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지만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라이벌 기업이 됐다.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모두 출범 당시에는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이제는 한국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의 역할도 지대했다. 수출 주도·중화학공업 육성의 경제발전 모델을 세우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독려하며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런 한국이 이제는 저물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경제성장은 정체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려 희망을 잃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 현장의 기업들이 의욕을 잃고 있다. 국내 투자보다 해외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다. 곧 2010년대가 저물고 2020년대가 시작된다. 한국 경제 그리고 한국 기업들에 한 차원 높은 단계로의 퀀텀점프가 필요한 시기다.
무엇을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제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따라가던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창의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식과 정보의 축적에서도 이미 민간은 정부를 훨씬 뛰어넘었다. 기업들은 “정부에 크게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 가만 내버려두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과거의 잣대, 정치적 표 계산 때문에 기업들을 각종 규제와 간섭으로 칭칭 묶어 버리면 한국 경제의 또 한 차례 도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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