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마포구 SBS프리즘센터에서 열린 ‘2019 SBS 연예대상’에서 방송인 김구라 씨가 생방송 인터뷰 도중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는 “연예대상도 물갈이할 때가 됐다”며 “5년, 10년 된 프로그램이 많다 보니 돌려먹기 식으로 상을 받고 있다. (대상 후보도) 구색을 맞추려 하지 말고 제대로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구절절했지만 정곡을 찔렀다. 김 씨의 일침에 많은 이들이 화답했다. 다음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드디어 나올 말이 나왔다” “속이 시원하다” 등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졌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선 지상파 3사의 연말 연례행사인 연기, 연예, 가요 시상식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좋은 연기, 훌륭한 무대를 상찬하자는 뜻깊은 자리가 어쩌다 이런 대접을 받게 됐을까.
사실 위기는 방송사들이 자초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해마다 반복돼온 상 돌려먹기와 중복 수상 작태는 연말 금쪽같은 시간을 TV에 바친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했다. 올해 SBS 연예대상에선 6개 부문에 중복 수상자가 나왔다. ‘챌린저상’ ‘패밀리상’ ‘SNS스타상’ 등 누가 봐도 참석한 모두에게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만든 듯한 정체불명의 상도 많았다.
더욱이 올해는 운영마저 매끄럽지 못했다. 27일 ‘2019 KBS 가요대축제’에선 걸그룹 에이핑크 무대가 갑작스럽게 종료되며 담당 PD가 공식 사과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25일 ‘2019 SBS 가요대전’은 걸그룹 레드벨벳의 웬디가 리허설 도중 무대 아래로 추락해 큰 부상을 입었다. 31일 열리는 ‘2019 MBC 가요대제전’은 방탄소년단(BTS)이 해외 일정으로 불참하자 MBC가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가수들의 출연을 거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씨는 이날 “광고 때문에 이러는 거 안다”는 우스갯소리를 덧붙였지만 이 말은 ‘전파 낭비’라는 비판에도 방송사들이 연말 시상식을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다. 스타 수십 명을 상을 매개로 3, 4시간씩 출연시키며 시청률까지 얻어낼 프로그램이 흔치 않은 것도 사실. 하지만 올해 KBS 연예대상은 1부 7.6%, 2부 7.7%(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역대 평균 최저시청률을 갈아 치웠다. 이젠 ‘시청률 불패’ 공식마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대상 후보에 오른 당사자가 말했기에, 김 씨의 일침이 방송계에 주는 울림은 더 컸다.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온 시청자들의 속내를 외면하는 이런 행사는 방송사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폐지를 하든, 3사 통합을 하든, 운영 혁신으로 권위를 높이든 구태의연한 관행을 갈아엎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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