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2년만에 단속 지침 개정… 사내하청 ‘불법’ 가능성 높아져
하청 준 목적까지 따져 판단… 전문성 낮은 업무 외주도 안돼
앞으로 하청회사의 관리자가 원청회사의 지시를 근로자들에게 단순히 전달만 해도 불법 파견으로 간주돼 처벌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와 같은 내용의 ‘근로자 파견의 판단 기준에 관한 지침’을 30일부터 시행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일선 근로감독관이 기업의 불법 파견을 단속할 때 판단하는 기준이다. 2007년 제정 후 12년 만에 개정됐다. 2015년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뒤늦게 반영한 것이다.
○ ‘불법 파견’ 판단 가능성 높아져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 등 32개 업무는 파견 근로자를 쓸 수 없다. 자동차회사의 경우 차체 생산과 부품 조립 등이 직접생산 공정이다. 다만 한 공장 안에서 특정 업무에 대한 하청(도급) 계약을 맺는 건 가능하다. 이를 사내하청이라 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 A사의 사내하청을 받는 B사 직원들은 B사 관리자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야 한다. A사가 B사 근로자에게 업무 관련 지시를 내리면 불법 파견이다. 파견 대상이 아닌 업무를 사실상 파견 방식으로 운용한 탓이다.
2015년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A사가 B사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시했을 때만 불법 파견으로 인정했다. A사 직원이 문서(작업지시서)나 구두로 B사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지시 준수를 요구하는 경우다. 종전 지침은 이런 직접적인 행위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새 지침은 간접적인 지시만 있어도 불법 파견이 될 수 있다. B사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지시한 내용이 A사의 결정을 단순히 전달한 것에 불과하면 불법 파견이 될 수 있다. B사의 재량권이 없다는 이유다.
원청회사가 인사권을 행사해도 불법 파견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청 업무의 전문성과 기술 수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전문성과 기술 수준이 낮은 업무를 외주로 바꿀 경우 불법 파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하청 목적까지 제대로 따지겠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미 현장에선 지침과 별도로 대법원 판례를 적용 중이다”라며 “판례를 지침으로 명확히 한 것일 뿐 불법 파견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인력 운용 ‘3중고’ 우려
경영계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이어 불법 파견 범위까지 넓어지면서 인력 운용의 부담이 한층 커지게 됐다. 불법 파견이 확인되면 고용부는 해당 근로자 전원에 대한 직접고용 명령을 내린다. 이를 이행하지 않는 회사에는 근로자 1인당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별도로 불법 파견의 고의성이 짙고, 죄질이 중하다고 판단돼 검찰 기소 후 유죄가 인정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일부 강성 노조가 새 지침을 근거로 사내하청 근로자의 직접고용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인건비 부담까지 가중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선진국의 초우량 기업들은 도급 계약을 통해 협업과 분업 시스템을 구축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전문성이나 기술 수준이 낮아도 도급은 가능한데, 정부 지침은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서비스업까지 도급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현장에서 불법 파견을 둘러싼 갈등이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