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은 서울에 올 때면 틈나는 대로 광화문의 닭요리 집에 들렀다. 하지만 국무부 2인자가 된 만큼 경호가 강화돼 탁 트인 공간에서는 자주 식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백악관 한반도 라인에도 최근 변화가 있었다.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보좌관은 최근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승진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관련 대외정책을 아우르는 자리. 전임자인 매슈 포틴저는 NSC 2인자인 부보좌관으로 올라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한반도 3인방의 승진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나. 오래 알고 지낸 카운터파트가 승진한 만큼 우리 일이 좀 수월해질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동맹 일이라면 너무 당연하게 여길 때가 적지 않다. 사실 비건이 서울 닭집에 가기 어렵게 됐다는 것은 그가 한반도 업무에 지금처럼 관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부장관(Deputy Secretary)은 그야말로 장관 대행이다. 북핵은 상황 관리 정도만 하게 될 수도 있다. 후커를 알고 지낸 한 외교관의 이야기는 동맹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나이브하다고 일깨운다. 후커의 승진 소식에 축하 겸해서 연락했더니 ‘(내가) 직급이 달라졌으니 (당신보다 높은) 다른 분을 카운터파트로 삼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한다. 포틴저는 주미대사 정도 아니면 만나기도 어려운 사람이 됐다.
이들의 달라진 모습이 떠오르는 건 이제 7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1950년 미국의 6·25전쟁 참전으로 시작된 한미동맹은 철통(ironclad)처럼 굳건(robust)하게 린치핀(linchpin·핵심 축)으로 양국을 이어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청와대 주인과 무관하게 미국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내년만큼 도전적인 한 해를 기다린 적도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내년 상반기 방한을 예고하고 있다. 6년 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대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가 여전한 상황에서 시 주석 방한으로 이를 풀어내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호재다. 워싱턴은 태연한 척하겠지만 사드를 고리로 한중이 다시 가까워지는 게 유쾌할 리 없다. 여러 번 공수표가 됐지만 김정은의 총선 전 답방 카드도 아직 살아 있다. 김정은이 내려온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둘 다 한미동맹에 마이너스 요소들이다.
한미 정치 일정도 동맹 관점에선 달갑지 않다. 트럼프는 내년 2월 3일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8월 공화당 전당대회를 거쳐 11월까지 대선으로 질주할 것이다. 버락 오바마도 대선 기간엔 외국 이슈에 신경 쓰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신경이 내년 4월 총선에 쏠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휴화산인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도 상반기에 다시 열린다.
필자의 이런 걱정이 그냥 기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영원불변한 건 없다. 워싱턴의 한 지인이 한미동맹에 대한 자신의 자세라며 들려준 말이 떠오른다.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최선의 결과를 희망하되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라).” 칠순을 맞는 한미동맹이 계속 건강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는 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와 함께할 거라 마냥 기대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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