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장관급 인사는 오해를 풀고 싶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주변 참모들이 눈과 귀를 가려서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너무 한가하다고 공격들을 하는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항상 소상히 보고를 받고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호’의 선장인데 국민들에게 최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줘야 할 것 아니냐. 당연히 속으로는 요즘 경제 현실에 상당한 절박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충성스러운 공직자의 평범한 정권 변호쯤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그 ‘절박함’만큼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새해는 집권 4년차, 이제는 정말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정권 후반부다. 중간평가 격인 총선도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과거를 돌아보면 경제를 망가뜨리고도 선거를 잘 치러낸 정권은 손에 꼽는다.
현재 지표만 놓고 보면 대통령은 절박함을 넘어 매일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성장률 전망은 올해도 2% 안팎을 맴돌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이었던 작년의 흐름이 올해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도 캄캄하다. 미국은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데 반해 기업 실적에 발목 잡힌 코스피는 주요국 중 상승률이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제심리와 함께 물가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답답한 경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정권 내부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다. 그 단면을 보여준 것이 얼마 전 발표된 새해 경제정책 방향이다. 액션플랜이 없어 다소 공허하긴 하지만 8대 핵심 과제 가운데 두어 개를 제외하면 모두 성장과 투자를 끌어올린다는 내용이다. 1년 전만 해도 공정경제나 분배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보수 정당의 선거 공약을 보는 듯하다. 공공 및 민간 분야에선 100조 원의 투자를 약속하며 다른 기관보다 훨씬 야심 찬 성장 목표(2.4%)를 던졌다. “우린 아직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위기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선 그간 내내 우리 경제를 괴롭혔던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적인 합의에 이르려면 시간이 한참은 더 필요하다. 반도체 회복의 신호도 불분명하고 중남미나 홍콩 등지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얼마 전 경제단체장들은 이런 외부 변수보다는 반(反)시장 정책과 무한 정쟁, 공무원의 보신주의, 이익단체의 발호 등을 더 무서운 악재로 뽑았다. 우리 경제를 가로막는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경고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보통 기업이 제일 잘 안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바로 체감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돈을 쓰기만 해봤지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는 정부는 시장에 공짜 쿠폰을 살포하면 경제가 저절로 살아날 것으로 믿는다. 규제 당국의 이런 잘못된 인식과 함께 시대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 개혁을 가로막는 정치권은 모두 혁신을 망치는 공범이다. 때로는 상대편보다 내 안의 적이 더 무서울 때가 있는데 요즘 우리 경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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