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발표하는 대신 전날까지 나흘간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연설 내용을 공개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이른바 ‘정면돌파전’ 노선을 내세워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의 지속적인 개발을 천명하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단 약속의 파기도 위협했다. 다만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해 북-미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김정은의 연설에서는 북한이 지금 처해 있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곳곳에서 읽힌다. 김정은은 시종 ‘날강도 미국의 이중적 행태’를 비난하며 “세상은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게 될 것” “충격적 실제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정은은 “우리에게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임을 시인했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대외 강경 도발을 천명하면서도 북-미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스스로 연말 시한을 내걸고도 ‘크리스마스 선물’ 도발을 하지 않았고, 1년 전부터 예고한 ‘새로운 길’도 공개 천명하지 않았다. 특히 핵·ICBM 시험 중단 약속에 대해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했지만, 약속을 파기하겠다거나 북-미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정면돌파’ 노선은 긴장 국면을 당분간 이어가겠다는 사실상 연장전 선언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은 “조-미 간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돼 있다”며 오히려 ‘시간은 내 편’이라고 주장했다. 대북제재 해제를 거부하는 미국에 맞서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 없이 해나간다면, 결국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핵능력은 높아지고 불가역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럴수록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주민 몫으로 돌렸다. 자력갱생과 자급자족, 즉 ‘장기 궁핍’을 예고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기어이 자력부강하자”고 했다. 대책이란 것도 고작 절약정신 체질화, 무조건 기일 내 완성 같은 몰아치기다. 김정은은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존엄을 팔 수는 없다”고 했지만, 자신의 존엄을 위해 주민을 굶겨 죽이는 지도자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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