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명의 시위대가 들이닥쳐 소리를 지르자 무대를 준비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성모 마리아, 동방박사, 천사 등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결국 1시간 만에 모두 중단됐다. 최근 성탄절 행사가 열린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위치한 생조르주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성탄 행사를 공격한 시위대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적 중립성 위반’을 문제 삼았다. 프랑스는 학교, 관공서, 공공건물에서 예수 탄생 연극, 캐럴 합창 같은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행위를 금한다. 1905년 제정된 정교분리법에 따라 일상생활과 종교를 분리하는 ‘라이시테(la¨icit´e·세속주의)’가 사회적 근간으로 확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탄절 행사나 설치물에 대한 의견 차 때문에 매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2월에는 프랑스 중서부 방데 도의회가 의회 건물에 아기 예수 탄생 모형을 설치했다가 지방법원의 철거 명령을 받았다. 방데 도지사는 “종교와 큰 상관없는 보편적 문화”라며 거부해 사회적 논란이 됐다. 2016년에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론알프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특정 종교나 국가를 넘어선 갈등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에는 지방의회를 견학하는 자녀의 보호자로서 동행한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건물에서 쫓겨났다. 2004년부터 공공장소에서 히잡, 부르카 등 특정 종교의 상징이 되는 복장을 입는 행위가 금지된 탓이다. 미국에서는 성탄절 인사를 그리스도(Christ)라는 의미가 담긴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로 할지, 중립적 의미인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로 할지를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갑론을박을 벌인다.
새해 초부터 거창하게 ‘종교적 중립성’ ‘다양성 보호’를 운운하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새해에는 더 행복하세요”를 반복하다 보니 불현듯 궁금증이 들었다. 맨날 ‘행복 행복’ 하는데, 대체 무엇이 행복을 결정할까? 돈, 건강, 명예, 권력….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웠다. 칼럼 주제를 ‘행복의 조건’으로 정하고 심리학 서적을 뒤졌다. 핀란드, 덴마크처럼 행복지수가 최상위권인 북유럽 국가의 특징도 따져봤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은 상황마다 너무 달랐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부나 명성보다는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버트 월딩어 미 하버드대 교수가 약 75년간 724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돈과 성공, 명예보다는 가족, 지인, 집단 내에서 고독을 느끼지 않으면서 양질의 관계가 유지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관계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됐다.
올해도 주변에 수많은 사건이 생기고, 해결 방식에 대한 생각 차로 계속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 번쯤 상대 입장에서 사안을 보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 어떨까. ‘행복의 조건’에 대한 소박한 결론이자, 2020년에 행복하기 위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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