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핵심 조직인 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하면서 미국-이란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이란 모두 물러서기 어려운 형국이어서 정면 군사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양국 갈등이 격화되면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물러설 곳 없는 미국-이란
2018년 5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JCPOA)’ 탈퇴 뒤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해 5, 6월 중동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소속 유조선 피격, 6월 이란의 미군 무인기(드론) 격추,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생산시설 피격 등이 이어지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그렇지만 양측은 정면충돌은 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 드론이 격추당했을 당시 “보복하면 150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는 이유로 공격 직전 이를 취소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은 과감한 군사작전을 펼쳐 이란 군부의 핵심을 제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라크 내 미국인 소개령을 내린 것도 이례적이다. 필요하면 군사 옵션을 자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란을 향해 단호한 대응조치를 내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종이호랑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공습 이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란은 한 번도 전쟁에서 이긴 적이 없는데 협상에선 한 번도 지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이란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알리 하메네이는 “그(솔레이마니)가 흘린 순교의 피를 손에 묻힌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보복하겠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조직(PMF)도 복수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이라크 총리실은 “미군의 폭격이 이라크에서 벌어질 파괴적인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라고 우려했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사건은 미국과 이란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중동의 미국 우방국들 긴장
먼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같이 이란의 정치·안보 영향력이 막대한 ‘시아벨트’ 지역에서 이란 측이 미국 또는 미국의 중동지역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국민과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은 시아벨트에 자국군을 일부 파견했고, 현지의 시아파 민병대들을 지휘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헤즈볼라의 경우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 전쟁을 벌여 큰 피해를 입혔고, 1983년 레바논 내 미 해병대 사령부를 공격하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 헤즈볼라는 중남미 지역의 반미 무장조직과도 협력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본토나 주변국에 대한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이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사우디와 UAE의 석유, 전력, 담수화 관련 시설을 공격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전 세계적인 석유 공급 차질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세계 최대 석유 유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도를 높이는 군사 활동으로 주요국들의 원유 수급에 악영향을 주는 조치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 북한에 ‘경고’로 작용할 수도
이번 사태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탄핵심판, 이란과의 충돌까지 겹치면서 북한에까지 신경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군사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로 재차 확인됐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을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야 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주로 중동에서 수입하는 한국에는 이번 사태가 적잖은 악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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