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미에 있는 일리천 전투 현장을 다녀왔다. 일리천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가 치른 최후의 결전이다. 구미보 근처에서 낙동강이 Y자로 갈라지고 주변에 제법 넓고 평평한 들판이 펼쳐져 있다. 정확한 전투 현장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략 이 주변 들판 어디라고 추정하고 있다. 후삼국 시대는 매우 흥미롭다. 궁예, 견훤, 왕건 등 개성 있는 지도자와 유금필 같은 명장이 등장한다. 여러 차례 전술적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격전이 벌어졌으며, 공산성, 조물성 전투와 같이 극적인 전투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삼국 시대는 미스터리투성이다. 격동기라 아무래도 기록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겉표지는 흥미 만점인데, 막상 책을 열면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 그 많은 미스터리 중의 하나가 견훤의 실패다. 견훤은 후삼국 시대 최고의 전쟁 영웅이고 그의 철기군은 최강이었다. 신라를 두고 벌인 고려와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견훤이 승리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견훤은 점령한 신라를 다스리지 못했다. 뒤늦게 쳐들어온 왕건까지 호되게 격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상당 지역이 왕건에게 투항했다.
견훤은 강하고 충성스러운 철기군단을 거느렸다. 친위 세력이 탄탄하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의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겼다.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렵지만, 추정을 해 보자면 전쟁에서는 승리해도 정치에서는 패배하고, 정복에는 앞서도 통치에는 뒤처지는 사례가 역사에는 종종 있다. 이런 불행이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친위 세력 의존증이다. 전투에서 충성스러운 친위 군단은 승리의 원천이자 전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통치는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 전쟁터에서는 승자와 패자, 명확한 적과 아군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는 경계선이 모호하다. 세상 사람이 다 아는 뻔한 이야긴데, 이걸 실천하는 건 쉽지 않다. 친위 세력에 둘러싸이면 전쟁터와 달리 궁정에서는 친위 세력을 통제하기조차 쉽지 않다. 400년 후의 이성계도 아들과 친위 세력에게 왕위를 잃었다. 왕과 수장의 차이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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