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예정됐던 제44회 이상문학상 수상자 공식 발표가 취소됐다. 이 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 측은 대상과 우수상 작품들 발표를 위한 기자간담회가 열리기 약 2시간 전인 이날 오전 언론에 ‘발표 연기’를 알렸다. 국내 대표적인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이 발표를 미룬 것은 40여 년 역사상 처음이다.
우수상 수상자로 통보받은 소설가 5명 가운데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상을 받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문학사상사가 발표를 연기한 것이다. 문학사상사는 1977년부터 매년 1월 초 대상 1편과 우수상 대여섯 편을 선정한 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펴낸다. 그런데 우수상 수상자의 과반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한 셈이다. 정상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사달은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 양도하고, 작가가 개인 단편집을 낼 때 수상작을 표제작(책 제목이 되는 작품)으로 쓸 수 없다’는 취지의 계약 조항에서 났다. 최 작가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3일 출판사 측이 이 같은 계약 내용을 알려왔기에 e메일로 ‘그럴 수는 없다’고 알렸다”고 밝혔다.
출판계에서는 ‘작가의 저작권 3년 양도’는 말이 되지 않는 조항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학사상사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작가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시대적인 불평등 계약”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우수상 수상 작가 일부가 이 조항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조항에 구애받지 마시라”는 취지로 답했다는 문학사상사 측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작권에 대한 작가와 사회의 인식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했다면 문제의 조항을 버젓이 계약에 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30년 전 독자가 어떤 소설이 좋은지, 읽을 만한 작품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때 이상문학상은 하나의 잣대가 돼줬다. 작품집은 매해 베스트셀러가 됐기에 작가로서도 독자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그래서 ‘저작권 3년 양도’를 수상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 관행처럼 굳어지기도 했을 터다.
출판사와 작가가 “우리 사이에 계약서는 무슨…” 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2010년대 초반 등단한 작가가 출판계약을 맺었을 때 계약서는 단 한 장이었다. 하지만 이 작가가 최근 서명한 계약서는 보통 10장 안팎이다. 종이책뿐만 아니라 e북, 오디오북, 웹 연재, 영화, 드라마 등 2차 저작권 내용이 가득하다. 이런 다양한 권리를 대리할 에이전시를 두는 작가도 늘어만 간다.
한 출판사 대표는 “젊은 작가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더 강화되면서 그만큼 출판사도 고민하는 지금이 과도기 같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그저 돈 문제만은 아니다. 작가의 권익 보호가 한 차원 더 진화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작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진화는 작가에 대한 존중이라는 기본에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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