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법 위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같은 공정거래, 뇌물수수 분야에만 (감시의 눈길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주요 기업 관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설립 취지, 구성, 감시 대상까지 전부가 파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민사회 인사가 포함된 상설 외부 준법감시기구는 국내에선 처음이다. 해외에서도 전문 준법경영 자문 기관에 의뢰하는 경우는 있어도 상설 기구를 만든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어떻게 운영되나
김 전 대법관은 ‘독립성과 자율성’이란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삼성 내부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했다. 앞으로 조직 운영 등 모든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삼성의 개입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준법감시위 위원은 김 전 대법관이 모두 직접 영입했다. 내부 위원인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도 삼성의 추천 없이 김 전 대법관이 선택했다. 나머지 5명과는 일면식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전 대법관은 삼성과 재벌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추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위원회는 회사 외부에 별도법인 형태로 2월경 공식 출범한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7개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해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는 형식이다. 이달 중 각 계열사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7일 7개사 사장단과 법무법인 등이 협약과 관련된 법적 절차 논의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위원들은 비상근직으로 이들을 지원할 사무국 형태의 상근조직도 꾸려진다.
위원들은 지난해 12월 상견례에서 삼성 전반의 준법감시 역할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노조, 승계 등 삼성 안팎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뿐 아니라 자체 홈페이지,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르내리는 내부 고발 게시글도 필요할 경우 들여다볼 예정이다.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으로 위원회에 합류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삼성 작업장 노동 문제와 기업 지배구조 문제, 경영권 상속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시민사회가 제기한 문제들을 삼성이 원칙적으로 처리하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연방 양형기준 뭐기에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 계획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제시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의 기준과도 맞아떨어진다. 앞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열린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위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을 참고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8일 관련 방안을 재판부에도 별도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구체적이면서도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요구하며 이를 평가할 기준도 상세히 정하고 있다. 제8장에 따르면 준법감시 체제에는 △범죄행위 방지를 위한 기준 및 절차 △경영진 훈련 프로그램 △정기 평가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 등이 요구된다. 삼성 준법감시위가 △사전 예방 조사 △직무교육 프로그램 △이행점검 △내부고발자 익명 신고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이 제도와 들어맞는다.
미국에서는 1991년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이 시행되면서 기업문화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형기준의 벌금 설정 방식이 기업 스스로 위법행위를 억제할 장치를 만들어 범죄행위를 방지·감지·보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2, 3년 전부터 이사회 기능을 보강해 준법감시체계를 강화하려 했지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에 외부 기구를 신설하는 건 법원의 ‘숙제’를 넘어선 진정성 있는 변화의 의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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