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사람들이 일단 ‘꼰대’라고 규정이 돼 버리는 순간 그가 하는 말은 그저 사리에 맞지 않는 잔소리쯤 된다. 그냥 입 닫으라는 뜻이다. 연륜에서 나온 인생의 지혜라는 말은 다 어디로 갔나.”
새해를 맞아 모인 대기업 경영자, 컨설팅업체 대표, 전직 관료, 대기업 연구원, 언론인의 조찬모임 테이블에서 나온 주제는 이처럼 부당하게 꼰대로 취급받는 서러움이었다. 각자 “나 때는 말이야…”를 읊을 만큼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런 서러움은 곧장 ‘요즘 것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내 주변의 젊은 애들은 요새 사실상 주 4일만 일한다. 초과근무수당을 안 받고 주 40시간만 근무하면 되니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최대한 초과근무를 해놓고 금요일에는 오전 10시까지만 일한다. 그때 퇴근해서 바로 3일짜리 해외여행을 가더라.”
대기업 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책임자급의 연구원이라 그저 근무시간만 채우려는 후배들이 좋아 보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매니저급으로서 연구개발의 성과를 윗분들에게 보고해야 할 때가 종종 있는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어겨선 안 되지, 후배들은 퇴근하지, 혼자만 발을 동동 구른다고 했다. 일단 퇴근한 뒤 그는 시설관리자에게 전화해 사정하곤 한다. “내가 왔다는 어떤 기록도, 흔적도 안 남기겠다. 문만 무조건 열어 달라. 내일 아침 보고해야 하는데 지금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런 하소연도 아는 관리자가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 요즘은 보고서 요약본까지 용역을 준 교수들에게 정리해달라고 한다 하네요.”
전직 공무원은 후배 공무원의 사례를 들었다. 공무원들은 정책을 도입하기에 앞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고 정책의 효과를 미리 예상해보려고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에게 용역을 준다. 용역의 결과가 담긴 보고서는 통상 한 권짜리 긴 보고서인데 이를 받아서 한두 장짜리 요약본과 함께 보고하는 게 관례다. 예전에는 과장-국장-차관-장관으로 이어지는 보고 과정에서 당연히 대면보고를 해야 했기에 용역보고서를 받아본 뒤 요약본은 공무원이 스스로 작성했다고 한다. 본인이 보고서를 공부해둬야 질문을 받을 때 답변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세종시와 서울로 장관들의 생활이 이원화되면서 국장도 차관도 대면할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요약본조차 용역을 준다는 것이다. 질문 받지 않으면 공부할 필요도 없고, 공부하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직은 직업이나 업무에 대한 ‘헌신’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사람들이 조직에 어느 정도 남아있기에 괜찮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업종이나 업무를 구별하지 않고 일괄로 시행되는 주 52시간제 문화가 이대로 정착하면 일의 가치는 그저 시간의 크기로만 매겨질 테고 직장은 시간 때우고 돈 받는 대상만 되지 않겠냐는 거였다.
한 사람이 분연히 말했다. “앞으로 공채 시스템이 사라질 것이다. 실력 없는 신입을 조직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우는 건 그가 앞으로 조직과 업에 충성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꼰대’인 우리 선배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사람만 있을 경우 신입보단 경력을 선호하지 않겠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참가자들은 안다. 우리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꼰대와 요즘 것들 사이 몰이해의 강은 앞으로 더 깊고 넓어질 것이라는 걸. 그저 푸념의 공감대로 다시 한 해를 살 힘을 얻자는 것일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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