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양안 교류’를 내건 야권 후보에게 20년 텃밭 가오슝(高雄) 시장을 내주며 참패하자 선거 당일 당 주석에서 물러났다. 불과 2년 전 당선될 때 ‘당나라 측천무후 이후 첫 중화권 여성 최고지도자’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냉혹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2020년 총통 선거 출마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제 선거에서 차이 총통은 압도적 표 차로 재선됐다. 두 차례 총통 당선과 지방선거 패배 모두 가장 큰 변수는 ‘중국풍(風)’이었다.
▷차이 총통의 탈원전 등 이념을 앞세운 정책, 중국의 여행 제한 및 수입금지 보복 등으로 대만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져 ‘저혈압 경제’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 초반 총통 지지율은 역대 최저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역대 총통 선거 사상 최다 득표에 20%포인트에 가까운 큰 차이로 당선된 것은 ‘홍콩의 눈물’이 빚어낸 ‘공감 홍콩, 반감 중국’의 정서가 일등공신이다. 지난해 홍콩 시위에서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민낯을 본 대만 민심이 친중파 야당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대만의 ‘반(反)중국’ 정서는 중국이 자초했다. 2008년 선거 당시 중국과 교류를 원했던 유권자들은 친중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동남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몰려왔다. 그러나 양안 간 3통(通·통상 통항 통우·서신왕래)이 실현되는 등 밀월기 8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중국 경제에 예속되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 2016년 총통 선거 직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마 총통과 만나 국민당 후보를 간접 지원했지만 차이 총통 당선을 막지 못했다. 1996년 첫 총통 선거 때는 독립을 주장한 리덩후이(李登輝) 후보를 압박하기 위해 가오슝 앞바다에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역효과만 났다.
▷대만인들 의식 속의 ‘탈(脫)중국화’도 분명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각각 ‘대만인’과 ‘중국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15년 59.5%와 3.3%에서 2019년에는 83.1%와 1.1%로 바뀌었다. 고등학생 중 ‘중국인’ 응답은 0.8%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에는 외국에 나가 있던 대학생들이 대거 귀국해 ‘앵그리 영맨’의 표심을 보여줬다. 홍콩인의 ‘중국인’ 응답도 2.7%에 불과하다. 55개 소수민족을 용광로에 녹이는 중국이 자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외면하고 강권으로 제압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할 뿐임을 홍콩 시위와 대만 총통 선거가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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