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아프리카 동부 세렝게티 초원에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수백만 마리의 누와 얼룩말들이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속속 세렝게티 남부 초원에 도착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1년 내내 신선한 풀을 찾아 넓은 초원을 1년에 한 바퀴씩 시계 방향으로 돈다. 무려 1500~2000km에 달하는 대장정인데, 묘하게 우리의 설날 때쯤 남쪽 초원에 집결한다. 물론 설을 지내거나 궐기대회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세렝게티 초원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기에 은폐물 엄폐물이 없다. 출산을 위해서는 포식자들의 눈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곳이 없으니 다 같이 모여 한꺼번에 새끼를 낳는 것이다.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초원의 순풍 산부인과’가 2주 정도만 문을 여는 이유다.
이 동안 정말이지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우선, 이 짧은 시간에 무려 50만∼60만 마리의 새끼가 태어난다. 웬만한 도시 하나 정도의 ‘인구’가 2주 만에 생겨나는 것이다. 더 인상적인 건 세상에 나온 지 30분 정도 만에 일어서고 두어 시간 만에 겅중겅중 달리는 새끼들이다. 우리 아기들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녀석들은 별일 아닌 듯 해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래야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예외는 있는 법. 가냘픈 다리로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힘이 약해 쓰러지고 마는 새끼들이 있다. 애써 반복해 보지만 마찬가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갈수록 힘은 빠지고 옆에서 지켜보는 어미는 애가 탄다. 하지만 어미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어미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무리가 이동하면 어미도 떠나야 한다. 하지만 모정이라는 게 뭔지, 어미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몇 걸음 갔다가 다시 오고, 또 얼마쯤 갔다가 다시 오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다들 떠나가는데도 어떻게든 새끼를 데려가려 외로운 반복을 계속한다. 묘한 건 바로 이런 시간에 많은 새끼들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어미의 간절함과 녀석들의 삶의 의지가 어떤 강력한 힘을 만드는 듯 말이다. 일단 일어서기만 하면 걷는 건 수월하다. 그렇게 어미와 함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20년 가까이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을 봐 오면서 느끼는 게 있다. 살아있으려는 힘이야말로 그 어떤 힘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의 기적, 생태계의 풍요로움이 다 여기서 생겨난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세렝게티 초원처럼 숨을 곳이 없는 평평한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초원에서는 주저앉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일어나 걸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건 지금 나를 누르는 이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 걷는 것이다.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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