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홍콩에서 만난 전직 테슬라 부사장과 BMW 부총재, 닛산의 전무이사 3명은 이런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20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은 이들은 자동차 시장에도 ‘아이폰 모멘트’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폴더폰 위주의 휴대전화 시장에 아이폰이 등장하며 업(業)의 정의가 바뀌었듯이,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일 거란 예감이었다. 내년부터 한국 전북 군산공장에서 5만 대 생산을 앞둔, ‘차이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업체 바이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바이톤, 차이나 테슬라의 탄생
글로벌 전기차 기업 바이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다니엘 키르헤르트를 8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만났다. 닛산 출신인 그는 BMW 출신 카스텐 브라이트필드, 테슬라 출신 스티븐 이브산과 함께 바이톤을 창업했다.
그는 “바이톤을 설립할 때 우리는 모두 ‘차’가 아닌 ‘디바이스’에 빠져 있었다. 실리콘밸리와 유럽, 중국의 유전자를 모두 합쳐 테슬라에 대항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바이톤은 본사가 중국에 있어 차이나 테슬라로 불리지만 독일인 CEO를 비롯해 핵심 인력은 독일과 미국 국적 기술진이다. △난징(엔지니어·제조) △상하이(마케팅·영업) △홍콩(투자) △샌타클래라(소프트웨어·자율주행) △뮌헨(디자인) 등 전 세계에 본부가 흩어져 있는 글로벌 회사다.
이날 현장에 전시된 바이톤의 주력 모델 엠바이트(M-Byte)는 유리 재질의 지붕과 내부 전면 48인치 곡면 스크린, 레벨4 자율주행(비상시에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완전자율주행)을 갖춘 미래형 차였다. 키르헤르트 CEO는 “차에 있는 시간은 그동안 시간 낭비였다. 우린 이를 가정생활과 직장 업무, 사회활동의 기지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운전석과 조수석 구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엠바이트의 스크린은 계기판이라기보다 홈시어터 화면에 가까워 보였다. 주행 경로와 날씨, 스케줄 등 각종 정보와 영상 콘텐츠 감상 등 차량 내 활동의 베이스가 될 스크린이었다. 키르헤르트 CEO는 “우리 스크린은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운전석과의 거리도 멀다. 현존하는 차량 본체에는 맞지 않는다. 우린 사용자경험(UX)을 먼저 설계한 뒤 이에 맞춰 차량 본체를 그다음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 한국은 5G 리딩 국가, 커넥티드카로 성공할 것
바이톤은 한국GM이 떠난 군산공장에서 내년 중반 5만 대 규모로 엠바이트 양산을 시작한다. 글로벌 시장 기준 최소 4만5000달러(약 5200만 원)로 가격이 책정돼 ‘가성비’로는 테슬라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슷한 가격대의 테슬라 모델3(5369만 원)은 완충 시 주행거리가 352km이지만 바이톤은 약 459km로 100km 더 달릴 수 있다.
한국 시장을 초기 테스트베드로 정한 이유를 묻자 키르헤르트 CEO는 “10년 안에 자율주행 시대는 올 것이다. 한국은 5세대(5G) 이동통신 리딩 국가이고, 우린 그곳에서 단순한 전기차가 아닌 커넥티드카로 성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의 5G를 우리가 세계 시장으로 들고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들 중에선 SK텔레콤이 1호 협력사로 나섰다. 국내 출시될 엠바이트 모델에 T맵 등 국내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서비스를 탑재하고 마케팅에도 함께 나설 계획이다. 키르헤르트 CEO는 “CES에서 만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차가 더 이상 이동수단이 아닌 디바이스라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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