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후면 이주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공무원의 실수였다며 환경영향평가부터 다시 받으라는 게 말이 됩니까.”
14일 이근수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1974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지난해 8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후 올해 3월 이주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사업시행 인가 전 단계인 환경영향평가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뒤늦게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애초 서울시는 지난해 1월 조합에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다”라고 알려왔다. 이 조합장은 “처음부터 대상이라고 알려줬다면 8, 9개월가량 걸리는 환경영향평가를 미리 준비하고, 올해 상반기 이주까지 다 마쳤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경과규정을 제대로 두지 않은 채 강화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면서 정비사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경과규정에 대해 지침을 잘못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으로 서울의 5개 정비 사업이 지연되면서 5000여 채에 달하는 대규모 주택 공급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3일 개정된 환경영향평가 조례안을 공포했다. 사업 면적이 9만 m² 이상인 정비사업장에 적용하던 환경영향평가를 연면적(각층 바닥 면적을 합한 총면적)이 10만 m²를 넘는 공동주택(아파트)에도 평가 의무를 부여한 것이 골자다. 기존에는 2000채가 넘는 대규모 단지에 해당됐지만 연면적을 기준으로 하면서 800여 채 규모의 중소형 단지도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그해 1월 8일 “6개월 경과규정을 두며 7월 2일까지 사업시행계획을 신청한 단지들은 기존 규정을 따른다”고 공문을 내렸다. 정비사업은 건축심의-교통·교육·환경영향평가-사업시행 인가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서울 노원구 상계1구역, 동작구 노량진3구역, 성동구 한남하이츠 조합 등 3곳은 지난해 7월 초까지 부랴부랴 사업시행계획을 신청했다. 이들은 사업 면적이 9만 m² 미만이지만 연면적은 10만 m²를 넘는 단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시는 “사업시행계획 신청이 아닌 인가받은 단지만 경과규정 대상이다”라며 다시 공문을 보냈다. 실제로 조례에는 인가를 기준으로 경과규정을 뒀다. 이동률 서울시 환경정책과장은 “조례의 상위법인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이 사업시행계획 신청을 기준으로 경과규정을 두다 보니 실무자가 착오를 일으켜 지난해 1월 잘못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로 인해 해당 조합들은 사업 지연을 겪으며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상계1구역 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시 안내를 받고 환경영향평가 업체를 섭외했다가 계약까지 취소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받으라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조례 개정 전 사업시행계획을 신청한 단지들마저 이번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촌현대 리모델링과 상도민영주택건설사업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각각 2018년과 2016년 사업시행을 신청한 후 지난해 8월과 9월에 인가가 났다. 인가 날짜가 7월 3일 이후라는 이유로 그 전 단계인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잘못된 행정을 인정하면서도 피해 사례 구제를 위해 조례를 개정할 뜻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부 혼선은 있었지만 환경권 역시 재산권에 포함되므로 이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환경을 중시하는 조례 개정 취지는 공감하지만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사업 지연으로 인해 주택 공급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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