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4일 설 연휴기간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과로하다 사망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응급의료체계개선안을 확정했다. 보건복지부가 17일 발표한 ‘환자 중심의 응급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 방향’의 주요 내용은 응급 환자 발생 시 119구급대가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환자 중증 정도를 판단한 후 지역별로 마련된 이송 지도에 따라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응급환자와 병원이 신속하게 연결돼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상급병원 응급실로의 쏠림 현상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개선안에는 1급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사인 구급대원이 심전도 측정과 중증외상환자 진통제 투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그동안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가 제한돼 있어 환자 이송 중 응급처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돼 온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조치다.
응급 상황에 처한 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아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응급환자가 10명 중 3명이 넘는다. 응급실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급하지 않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몰려들어 정작 급한 환자들이 ‘병원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미스매칭’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불거진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과 의료원장 간 갈등의 주요 원인도 병상 부족 문제였는데 동아일보 취재 결과 외상센터 환자의 절반이 경증 환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응급환자의 상태를 판단해 적합한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수 있는 응급환자 분류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다. 윤 센터장이 열악한 응급의료체계와 싸우다 숨지는 일이 생기고서야 제도 개선에 나선 것도 유감이지만 사망 1주기가 가까워지도록 ‘개선 방향’ 발표에 그친 점은 더욱 아쉽다. 도심이든 시골 외딴곳이든 언제 어디서 쓰러져도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믿음직한 응급의료체계 가동에 속도를 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