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애호가라면 듣기만 해도 떨리고, 숨 막히는 이름들이다. 만약 이들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는 집은 어떻고, 가족과는 뭘 하며 지낼까? 무슨 요리를 즐겨 먹고, 노벨상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석에서는 무슨 얘기를 좋아할까?
이 궁금증들을 해소할 책이 나타났다. 이 시대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을 쓴 거장들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23인과 만나는 세계일주를 택했다. 스페인에서 약 20년간 문학전문기자로 활약한 저자의 궁금증 역시 팬들이 던질 법한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쾌하게 우리의 호기심을 해소해주며 작가들의 통찰도 생생히 전한다.
작가들과의 만남만으로도 부러운 여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기도 하다. 저자가 10년에 걸쳐 힘들게 수확한 작가들의 언행과 감각적 사진들은 하나하나 과실처럼 소중하다. 그는 신간이 나오면 의례적으로 치러지는 ‘호텔 인터뷰’를 지양하고, 삶 속으로 직접 파고들기로 했다. 가능하다면 가족도 함께 만나 집, 주방, 작업실을 돌아보고,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 작가와 같이 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저자는 “작가 대부분이 문화 너머의 일들과 담을 쌓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소외된 것들과 뜻을 함께한다”는 공통분모를 끄집어냈다. 또 권력, 돈, 명예보다 자신의 일을 늘 우선시한다고 서술했다.
인터뷰 성사 과정도 흥미롭다. 대사관 지인, 가족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10년 넘게 외부와 접촉을 끊은 ‘백 년의 고독’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007 영화처럼 만남 장소만 일러둔 채 무작정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도록 했다. 자국, 해외 언론을 피해 몰래 만난 자리에서 작가는 공식적으로 절필 의사를 밝히며 “명성은 권력과 같아서 현실감각을 흐트러뜨려 내 삶은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오르한 파무크는 민족주의자들의 암살 위협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을 남겨둔 채 저자와 산책에 나섰다. 저자는 “이 상황에 오르한 파무크는 분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유머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분석도 덧붙인다.
2016년 별세한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와는 며칠 동안 함께 걷고, 먹고, 마셨으며 밤샘 토론도 했다. 1994년 극단주의자에게 습격을 당한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는 건강상, 신변상 이유로 짧게 만나야 했다. 도쿄에서 만난 오에 겐자부로는 사케를 대접하며, 심리적 장애가 있는 아들의 이야기도 꺼내놓는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유명한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그의 서재를 거리낌 없이 공개했다. 198cm의 장신인 그는 “휴대한 지팡이는 걷는 데 필요한 게 아니라 책장 맨 윗줄의 책을 꺼내는 용도”라며 웃었다. 다소 호들갑스럽다는 묘사를 보면, 한 수다쟁이 프랑스 할아버지가 곁에 있는 듯하다. 수록된 사진들도 보는 맛을 더한다. 작가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작가들과의 만남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값진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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