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주택거래 허가제’는 ‘강남으로 이사 가려면 허가를 받고 가라’는 말로 요약된다. 말을 뱉었던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은 물론이고 당정청 모두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봐선 당장은 추진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실현된다면 집값을 잡을 수는 있는 걸까. 재산권 침해나 거주 이전의 자유 제한 같은 위헌적 요소는 차치하고 말이다. 그래서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해 봤다. 이성적 합리적 생각만으로 ‘모든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갈릴레이가 행했던 그 방식이다.
먼저, 이름이 ‘허가제’이니 특수한 사정이 있으면 거래는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조건은 무엇일까.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볼 때 우선 무주택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 그리고 전세대출 제한의 예외 조건으로 인정되는 근무지 이전이나 질병 치료, 부모 봉양과 같은 최소한의 명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허가제를 실시하는 이유가 강남 유입 수요를 차단해 강남 집 매수세를 끊는 것이니 위와 같은 명분으로는 쉽게 허가가 날 것 같지는 않다. 정부는 허가 조건을 엄격하게 만들어 거래가 거의 없는 수준까지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거래가 제로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강남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은 조건이라면 용케 매수 허가를 받은 사람은 더 비싼 값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강남으로 오려는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얼마든지 배짱을 튕길 것이다. 정부는 매수가 힘든 환경이니 적은 거래량에서나마 떨어진 가격으로 거래가 일어나길 원할 것이다. 관건은 강남에 대한 수요다. 거래량이 적으면 일부 투기꾼의 가격 장난에 노출될 위험은 더 커진다.
사고실험의 조건을 더 단순화시켜 보자. 거래량이 그냥 제로인 상태라면 어떨까. 강남 집값은 이론상으로 변동이 없게 된다. 거래가 전면 금지된 그날 시세가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때 말했던 강남 집값 하락의 실현 가능성도 제로가 된다.
그런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숫자로 된 가격이 없다고 사람들이 강남 집값의 가치를 셈할 일이 없을까. 강남 집을 담보로 한 은행권 대출까지 막는다고 해도 개인 간의 담보까지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시세를 대체할 ‘잠정 가격’을 산출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주택 가격은 복지정책의 기준점도 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든 잠정 가격은 등장할 것이다.
매매는 금지됐지만 아직 전세는 살아 있는 상태다. 강남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은 상태라면 전세금은 집을 사서 강남으로 이전하려던 수요까지 더해져 더 높아질 것이다. 더 높아진 전세금은 잠정 가격의 최소 기준선으로 강남 부동산의 가치를 떠받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강남 수요가 관건이다.
강남 집값이 오르지는 않았으니 어쨌거나 성공적이라고 이 정권은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럼 그런 상태는 언제까지 유지될까. 제도가 유지되는 기간이 정답일 텐데, 그건 정권이 유지되는 기간과 같을 것이다. 강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세 변동이 있는데, 강남만 변동이 없는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억눌린 수요가 한꺼번에 터지면 부작용이 더 커진다고 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 강남으로 몰리는 수요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주거 조건을 갖춘 강남의 교통 편의성, 교육 여건 등을 파괴하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너무 비싼 집값은 공동체에 해롭다는 건 누구나 안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그걸 ‘매끄럽게’ 처리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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