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고가 이란이 미국 순항미사일로 오인해 격추한 사건으로 알려지면서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란이 사용한 미사일은 토르(SA-15) 지대공미사일. 1970년대 옛 소련에서 개발됐다. 이란군은 2000년대 초에 항공기 요격용으로 도입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SA-15를 비롯해 옛 소련제 지대공 유도무기는 높은 명중률 등 강력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번 포착한 ‘표적’은 웬만해선 놓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도 토르 자체의 결함보다는 운용 요원의 오판과 지휘통신 차질, 낙후된 방공관제 시스템이 원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北 방공망
이번 사건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북한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SA 계열의 지대공미사일을 주축으로 고도별로 삼중 사중의 ‘거미줄 방공망’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방공망을 갖춘 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북한의 방공망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북한의 방공 시스템은 공군사령부 예하에 항공기·지대공미사일·고사포(대공포)·레이더 부대 등으로 이뤄져 통합 운용되고 있다. SA-3(저·중고도)와 SA-2(중·고고도)·SA-5(고고도) 지대공미사일을 영변 핵시설을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지 등 주요 군사거점 주변에 집중 배치해 놓고 있다.
적기의 출현 고도(10여∼40여 km)에 따라 단계별로 저지·격추하는 다중 요격 방어망을 구축한 것이다. 이들 미사일은 자체 레이더로 ‘타깃’을 탐지한 뒤 발사 이후 목표물 근처에서 수백, 수천 개의 파편 탄두를 터뜨려 격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2018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SA-2와 SA-5는 전방과 동·서부 지역에 주로 배치돼 있다. 주석궁(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무실) 등 지휘부가 있는 평양 지역과 주요 군수·산업시설도 SA-2와 SA-3와 함께 수천 문의 고사포(대공포)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북한의 지대공 미사일 가운데 SA-5는 가장 긴 ‘눈(레이더)’과 ‘주먹(미사일)’을 갖고 있다. 옛 소련이 냉전시절 미 전략폭격기 요격용으로 개발한 SA-5는 레이더 탐지거리가 500km, 최대 사거리도 250∼300km에 달한다. 유사시 휴전선 인근에서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지역 상공의 아군 군용기까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SA-5는 강원 원산과 황해북도 사리원 인근에 배치돼 동·서해로 접근하는 적기의 조기 식별과 요격 임무도 수행한다. 2017년 미국의 B-1B 전략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대북 근접 무력시위를 할 당시 SA-5의 레이더가 이를 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운용 중인 SA-2·3·5 미사일은 최소 400기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이들 전력의 레이더와 미사일 성능 개량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 ‘북한판 패트리엇’ 등 독자 요격무기도 개발
북한은 독자적인 지대공 무기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북한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KN-06(북한 명칭 번개5호) 지대공 미사일이 대표적 사례다. 2010년대 초부터 개발한 KN-06은 러시아의 S-300(사거리 100∼150km, 요격고도 25∼30km)과 맞먹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2016, 2017년 김 위원장은 KN-06의 시험발사를 연이어 참관한 뒤 군 지휘부에 반항공(대공) 능력을 대폭 강화하라고 누차 지시한 바 있다.
이 밖에 다양한 구경의 대공포와 고사기관총,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 북한이 운용 중인 단거리 대공방어무기도 1만4000여 문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지상관제요격 기지와 조기경보 기지 등 다수의 레이더 방공부대가 북한 전역에 분산 배치돼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한반도 전역을 탐지할 수 있으며 우리 군의 중앙방공통제소(MCRC)와 같은 자동화 방공지휘통제시설도 갖춘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종합적으로 이란의 방공망보다는 ‘몇 수 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군 당국자는 “한미 공군력에 ‘절대 열세’인 북한은 강력한 방공망 구축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이 보유한 810여 대의 전투기 가운데 가장 많은 미그(MIG)-19·11은 1950년대에 생산된 노후 기종이다. 그나마 신형으로 분류되는 미그-29도 한미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레이더 성능과 무장, 항법장비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의 압도적인 공군력에 제공권을 완전히 빼앗긴 경험과 지금도 취약한 공군력의 한계를 강력한 방공망으로 ‘상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 공군사령부의 정식 명칭이 ‘항공 및 반항공군사령부’라는 데서도 방공망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 양적으론 놀랍지만 치명적 위협은 안 돼
하지만 북한 방공망의 약점과 한계도 적지 않다. 방공망의 주축인 SA 계열의 지대공미사일 상당수는 도입한 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레이더·미사일·사격통제장치 등 주요 장비가 낡아서 유사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무기의 운용 유지에 필요한 부품·장비 확보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북한은 과거 같은 종류의 지대공 무기를 운용 중인 공산권 국가에서 부품을 들여와 보수 정비를 했다. 하지만 핵개발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가 강화된 이후 부품 조달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실제로 2013년 쿠바에서 SA-2 미사일의 사격통제레이더 장비를 실은 북한 화물선(청천강호)이 운항 중 파나마 당국에 적발돼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북한의 방공망이 한미의 첨단 공군력을 상대하기에 버겁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F-22, F-35A 스텔스전투기를 비롯해 강력한 전파를 쏴 레이더를 교란하거나 먹통으로 만드는 EA-18G(그라울러) 전자전공격기, 대(對)레이더미사일(HARM) 등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레이더 제압용 하피 무인공격기(120여 대)도 갖고 있다. 하피는 차량에서 발사된 뒤 2∼5시간가량 적진 상공을 비행하다 적 레이더 전파가 포착되면 곧바로 레이더를 향해 돌진해 자폭한다.
북한이 보유한 대공포나 고사총은 대부분 사거리가 짧고 요격고도도 낮아 한미 공군력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또한 합동정밀직격탄(JDAM)과 같은 공대지 유도무기의 상당수는 북한 요격망의 사정권 밖에서 발사된다. 아군 전투기가 북한 요격망에 피격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다.
아울러 유사시 한미 공군 전투기들은 타우러스(사거리 500km)와 같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로 북한의 방공망을 뚫고 주요 표적을 수 m 오차 범위 내로 초정밀 타격할 수 있다.
군 소식통은 “한미 연합군은 개전 후 며칠 내 가용한 공군력을 총동원해 조기경보레이더와 지대공미사일 기지 등 북한 방공망의 90% 이상을 제거하는 작전계획을 갖고 있다”며 “북한의 방공망이 양적으론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지만 질적 측면에선 치명적 위협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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