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올해 7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의 핵심 변수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미 국무부는 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북한 개별 관광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를 밝힌 뒤 당정청이 일제히 대사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 “해리스 대사는 국무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를 직접 겨냥한 건 아니지만 해리스 대사에 대한 집권세력의 공격에 불쾌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실제로 해리스 대사는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문 대통령의 남북 속도전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미 외교가에선 ‘역대 가장 논쟁적인 주한 미 대사’인 해리스 대사의 파격적인 언행을 놓고 한미가 계속해서 균열상을 드러낼 경우 한미동맹에 악영향만 끼칠 수 있는 만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해리스 “대통령 대변”에 美 국무부 “신뢰”
해리스 대사는 16일 자신의 직설적 발언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미국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reflect)하다 일부 (한국 내) 여론과 부딪친다면 내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가 개인 생각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뜻을 반영했다는 점을 시사한 것. 그러면서 “관광 그 자체는 제재 대상이 아니다. 중국은 항상 관광객을 (북한에) 보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에 관광이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북한 관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표적인 국가로 ‘제재 구멍’으로 지목되는 중국을 언급한 것이다. “특별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편을 들지 않는다”라고 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한국에서 파장을 낳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그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해리스)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서 그가 행사해 온 물밑 영향력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 대사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방위비 협상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 기고문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 콧수염 논란엔 “안창호 안중근도 수염” 해명
해리스 대사는 이전에도 각종 직설화법으로 한미 외교가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켜 왔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한창일 때 여야 의원들을 불러 ‘50억 달러’를 20여 차례 강조하며 미국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한 게 대표적이다.
그의 이런 ‘비외교적’ 화법은 그가 외교관이 아니라 군인 출신이라는 것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해리스는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참모차장과 합참의장 보좌관을 거쳐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사령관(현 인도태평양사령관)을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령관 시절 워싱턴의 각종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서도 여야 의원들과 예산 증액 등 각종 군사 현안을 놓고 토론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끈한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더 자신감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애초 주호주 대사로 부임하려던 그가 막판에 트럼프의 선택으로 서울로 오면서 주재국의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부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그가 말한 것 중 틀린 것은 없지만, 공개 메시지는 더 긍정적으로 발신하고, 강경 메시지는 사석에서 전달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리스 대사도 자신의 언행이 예기치 않은 파장을 낳자 해명에 나서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콧수염에 대해 ‘일제 총독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는 16일 간담회에서 “한국 독립운동사를 보면 안창호 안중근도 수염이 있었다. 당시 아시아 유럽 미국을 막론하고 수염을 기른 사람이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靑 “해리스 리스크는 우리가 손해” 확전자제
남북 협력 사업에 대한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17일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했던 청와대는 그 후 추가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리스 대사의 (비판적인) 발언으로 한미동맹을 흔들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해리스 리스크’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당분간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핵심 현안을 두고 한미가 충돌하는 모양새를 더 이상 연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과 가까운 방송인 김어준 씨는 17일 방송에서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언급한 뒤 “이런 소리에는 이런 음악이 딱”이라며 ‘Who let the dogs out(누가 개를 풀어놨나)’라는 팝송을 트는 등 진보진영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부 여권에서 나오는) 조선 총독이냐는 식의 비판은 넘으면 안 될 선을 넘는 것”이라면서도 “(해리스 대사도)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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