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사회서 정체성 지켜냈던 구전가요 창가집 등 23권 지정
광주 고려인역사전시관에 전시
고려인들이 100여 년 동안 옛 소련 사회를 유랑하면서도 정체성을 지켰던 민족의식이 담겨 있는 문학예술 작품이 국가지정기록물이 됐다. 국가지정기록물은 광주 고려인마을에 들어서는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가칭)에 상설 전시된다.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은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 23권을 국가기록물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기록물은 고려인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려인 1, 2세대 한글문학 작가 김해운 김기철 한진의 육필 원고 19권과 구전가요가 수록된 창가집 2권, 사진첩 2권이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기록물들은 고려인들이 구소련 사회에서 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족의식을 지켰던 흔적”이라며 “희소성과 정보가치가 있어 국가기록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해 구소련 연방국가인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동포를 일컫는다. 역사학자들은 한국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처음 이주한 것은 1863년이라고 분석한다. 이후 항일독립 운동가들이 이주해 활동했지만 1937년 옛 소련 당국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번 국가지정기록물은 민족정신과 항일운동의 정신이 담긴 산물이다. 국가지정기록물은 고려인 연구가 김병학 씨(55)가 15년 동안 모은 책, 신문 등 각종 자료 중 일부다. 김 씨는 “고려인들의 각종 자료 1만여 점을 모았다. 많은 사람이 고려인들의 민족의식을 알고 배울 수 있도록 자료를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국가기록물로 지정된 작품 중 1세대 고려인 극작가이자 배우인 김해운 씨(1909∼1981)가 1935년 쓴 희곡 ‘동북선’이 민족의식이 가장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동북선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웅진까지 이어진 철도다. 동북선은 철도 근로자들이 일제의 만행에 눈을 뜨고 항일운동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동북선은 1950년대까지 연극 공연이 이뤄졌고 최근까지 고려인들 사이에서 노래가 애창됐다. 김 씨가 만들었던 카자흐스탄 고려인극장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또 고려인 2세대 대표 극작가 한진 씨(1931∼1993)의 소설 ‘공포’는 강제이주 참상을 슬픔의 미학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사진첩 두 권에 담긴 사진 260여 장은 1932년 설립된 최초 우리말 연극극장인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광주 광산구는 올 하반기 고려인이 모여 사는 월곡동에 복합 아카이브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2층 주택 두 채를 구입해 리모델링한 뒤 소통공간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으로 꾸밀 계획이다. 외국인 집중 거주지역 기초인프라 조성사업의 하나다.
고려인마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월곡동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현재 고려인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근로자 등 5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마을에는 주민종합지원센터, 지역아동센터, 진료소, 미디어지원센터, 청소년문화센터 등이 들어섰다.
김삼호 광주 광산구청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강제이주로 핍박받은 고려인 동포들을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며 “고려인마을이 있는 월곡동에 200억 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해 글로벌타운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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