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7월 예정된 ‘보조금 삭감’ 철회… 중국 업체 경쟁력 강화 정책 지속
EU는 17개 기업에 4조원 예산 편성
한국은 “무역분쟁 소지” 지원 외면… 업계 “우리정부도 적극적 대책 필요”
각국 정부가 연초부터 자국 차량용 배터리 산업 육성·지원 정책을 앞다퉈 내놓으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중국에 이어 유럽 기업의 도전장까지 받게 된 국내 업계는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중국 매체 시나닷컴 등에 따르면 먀오웨이(苗圩) 공업신식화부 부장(장관)은 최근 한 민간 포럼에 참가해 “올 7월 1일로 예정됐던 친환경차 보조금 일부 삭감 조치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변칙 지원 정책을 2017년부터 펴왔으나 지난해 6월 기존 대비 절반 수준으로 보조금을 줄였으며 올해 말 완전 폐지할 예정이었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민간 업체의 자립을 위해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했는데, 지난해 전기차 내수 판매량이 줄어드는 등 타격이 크자 방침을 뒤집은 것 같다”고 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 BYD는 정부 지원과 탄탄한 내수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했고 지난해 각각 1, 4위에 올라섰다. 중국 기업이 보조금을 먹고 쑥쑥 크는 동안 한국의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과 일본의 파나소닉은 차별화 정책의 피해를 봤다. 먀오 부장의 발언대로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이 지속될 경우 내년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기대했던 한국 배터리 3사는 또다시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배터리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유럽 주요국도 대규모 예산을 편성해 배터리 산업 육성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배터리 산업 육성에 쓰일 32억 유로(약 4조1280억 원)의 보조금 예산을 7개 회원국 17개 기업에 지급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EU 집행위는 민간 기업의 출자금까지 더하면 배터리 산업에서만 총 82억 유로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대형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다임러, BMW 등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한중일 기업에서 생산한 배터리 수입을 줄이고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EU 탈퇴 절차를 밟고 있는 영국 정부도 2025년 차량용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우선 2억7400만 파운드(약 411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최근 ‘배터리산업화센터(BIC)’ 설립에 착수했다. BIC는 영국 내 배터리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기술 개발과 직원 교육을 담당한다.
한국 정부는 중국 영국 EU 등과 달리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은 시행하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무역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어 직접 예산과 보조금을 주는 정책은 배제했다”며 “그 대신 펀드 조성을 지원하거나 연구기관을 통해 기초 기술을 발굴하도록 국책 과제를 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은 물론이고 공정 경쟁을 중요하게 여기는 EU조차 노골적으로 정부 지원책을 내놓는데, 한국 정부만 너무 얌전해 불공정한 시장에서 자력으로 뛰게 만든다”고 토로하고 있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는 “중국 배터리의 기술력은 한국의 85% 수준이지만 보조금 지원이 계속되면 격차는 빠르게 좁혀질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배터리 소재·부품사부터 대형 업체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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