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9일 오후. 서해에서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다. 인도적 지원단체의 모니터링을 명분으로 얻은 첫 평양 취재이자 북한 내륙 관광. 입국 전 휴대전화를 인솔자에게 맡긴 뒤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 완전 차단된 3박 4일 일정이 시작됐다. 무슨 일이 터지면 오로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취재 환경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고 평양 시내와 백두산, 묘향산 등을 돌아보는 동안 북한 당국자들은 남한 기자를 밀착 감시했다. 통일전선부 소속 안내원이 바로 옆에 따라붙었고, 5m 근처를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안내원이 빙빙 돌며 우리 둘을 지켜봤다. 기자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남한 관광객 전체를 어디선가 최고책임자가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3중으로 감시당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당신에게 말을 거는 북한 사람은 모두 고도의 훈련을 받은 대남 공작 요원들이요,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상부로 보고될 것’이라는 교육을 단단히 받고 간 터였기 때문에 2007년 11월 마지막 일곱 번째 평양 방문 취재까지 ‘큰일’을 당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관광하듯 북한 땅을 찾은 일행 중에는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어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김씨 세습 독재 체제를 비판하다 쫓겨날 뻔한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산 러시아제 고려항공 여객기가 기류를 만나 급전직하하고, 인민대학습당의 낡은 엘리베이터가 내려앉는 장면도 목격했다. 겨울에 무리하게 백두산에 오르던 버스가 벼랑길을 뒷걸음칠 때의 오싹함이란.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탄에 사망한 박왕자 씨 사건은 가장 심각한 경우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개성과 금강산 관광이 성사될 경우 과거의 내륙 관광보다는 ‘개인 신변 안전 위험’이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광 재개가 대한민국에 미치는 ‘체제 안전 위험’은 전보다 더 큰 상황이다.
2000년 10월 금강산 관광으로 시작해 2008년 5월 개성공단 취재를 마지막으로 북한을 아홉 차례 방문하는 동안, 함께했던 보통 한국인들이 처음 북한을 방문한 뒤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북한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보수 인사들과 북한의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하는 진보 인사들은 방북 후 생각이 달라질까? 아니었다. 보수 인사들은 더 보수가 되고, 진보 인사들은 더 진보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함께 금강산을 올랐던 공안검사에서 종교인과 의료인 등 하는 일과 나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 개별관광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아마도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평화롭게 번영할 수 있다는 이 정부 대북정책을 찬성하는 이들이 선두에 설 것이다. 과거의 관찰대로라면 이들은 ‘미국의 고립 압살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핵을 가지게 되었다’는 북한 당국자들의 거짓말에 ‘격하게’ 공감하고 ‘우리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강한 결심을 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지금으로선 정부의 제의를 수용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이 만약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한다면 자신들이 핵을 가지고도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점을 최대한 선전하기 위해서일 게다. 남한 사회에 남남갈등의 불꽃을 키우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제재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워싱턴을 무시할 경우 가뜩이나 삐걱거리는 한미관계에 추가 균열이 우려된다.
신변 안전 위험은 잘 교육해 방지하면 된다. 하지만 체제 안전 위험은 둑이 터진 것처럼 되돌릴 길이 없다. 이 정부엔 그것이 위험이 아니라 바라는 바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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