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가 ‘와츠앱’ 메신저를 통해 세계 최고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주의 휴대전화를 해킹한 시점으로 알려진 2018년 5월 직전에 서구 최고위 인사를 대거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다른 유명인의 휴대전화도 해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22일 가디언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투자 유치를 위해 2018년 3월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 등을 방문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외교장관(현 총리),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같은 거물 인사를 줄줄이 만났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애틀랜틱그룹 창업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 등 세계적 경영자와도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들과 와츠앱으로 대화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기술(IT) 기기 사용을 즐기고 측근 및 지인과 와츠앱으로 자주 소통하는 그의 성향을 고려할 때 다른 이의 휴대전화도 해킹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와 각별한 사이인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휴대전화 해킹 가능성이 거론된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쿠슈너는 와츠앱으로 자주 소통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이날 유엔 특별보고관은 해킹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유엔은 이번 사태가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된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당시 카슈끄지가 베이조스 창업주가 소유한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왕실 비판 글을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배후에서 살해를 조종했다고 지목받았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겉으로는 개혁 군주인 척하지만 중세 전제 군주 못지않은 폭정을 휘두른다’ ‘국제 사회가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의식해 카슈끄지 살해를 방관한다’는 논란이 거셌다. 쿠슈너 고문은 집권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사우디 제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적극 저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카슈끄지 사태에 이어 이번 사건까지 더해져 무함마드 왕세자의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해킹 사실이 드러나면 핵심 동맹인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이미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여론전을 진행해 여러 나라 및 기업과 갈등을 빚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은 지난해 8월 사우디 정부 차원에서 여론 조작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난 계정 350개를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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