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원작의 영화 ‘완벽한 타인(Intimate Strangers·2018년)’은 결국 모두가 ‘타인’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말한다. 시작은 단순한 장난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40년 지기 친구들이 휴대전화를 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오는 전화, 문자를 모두 공유하기로 한 것. ‘해? 해?’ 하던 것이 행여 반대라도 하면 자신만 켕기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래, 해! 해!’ 하며 실행으로 이어져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비밀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인지 대부분이 ‘기 승 전 불륜’이긴 하지만, 휴대전화 하나만 털려도 드라마에서 ‘호러’로 급격한 장르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들이’ 지은 죄가 많은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서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사소할지언정 당장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덕분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이면 나 아닌 모두가 의심스럽다. 휴대전화 전원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연인의 얼굴을 살핀다. 설마, 너도?
하루가 다르게 퍼지는 특정 연예인의 메시지 내용을 보며 왜인지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강제 휴대전화 게임에 투입된 셈이다. ‘우리끼리’의 대화였을 테지만 적절치 않았고,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전 국민이 함께 그의 휴대전화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메시지는 하루가 다르게 퍼져 나가며 또 다른 가십을 생산하고, 대중은 등을 돌린 지 오래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완벽한 타인이었을 그는 이제와 대중에게 나쁜 가해자가 되었다.
비난하는 목소리 가운데 용기 내 의견을 표했다. “그래도 그 사람도 안 되긴 했어.” “왜?” 사람들은, 퍼져 나간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지, 왜 이 이야기가 퍼져 나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 해킹이 있었고 협박이 있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논외니 제외하더라도 그 두 키워드만큼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박받은 연예인이 그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는 약점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그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메시지의 내용에만 초점을 맞춘 여론이 어딘지 본질을 벗어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개인정보 유출 자체에 대한 윤리의식 내지는 경각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특정 사안에서는 가해자인, ‘나쁜 피해자’일지언정, 그 역시 피해자다. 피해자로서의 연민, 가해자로서의 환멸, 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는 물론 개인의 선택일 것. 하지만 그 평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스스로 가십의 ‘소비자’로만 남는다면, 그에 부응하는 제2, 제3의 사건이 생산될 것이다. 화살을 받아야 할 쪽은 분명 저 너머에도 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해킹 협박’ 비즈니스(?)가 연예인들을 시작으로 정착되면 충분히 일반인들을 대상으로까지 대중화(?)돼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과연 이 강제 휴대전화 게임으로부터 안전할까. 하다못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진 한 장이라도 있지 않았던가. 그 경중은 다를지라도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나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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